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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가로막는 '빨리빨리' 풍토 없애야

류수근 기자I 2012.10.25 08:59:01
[이데일리 류수근 기자] 올해도 남의 잔치만 구경하고 끝났다. 지난 15일 막을 내린 2012년 노벨상 얘기다. 우리에게는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화상 수상이 처음이자 마지막 소식이었다.

올해는 일본 야마나카 신야 교수의 생리·의학상 공동 수상 소식을 접하면서 그 어느 해보다 더 큰 아쉬움이 남았다. 야마나카 교수는 유도만능줄기세포(IPS)를 만든 공로를 인정받았다. 줄기세포와 관련한 수상 소식은 몇 년전 온나라를 들썩였던 황우석 교수 사태를 기억하는 우리로서는 마음이 착잡할 수밖에 없었다.

야마나카 교수의 수상으로 역대 한·일간 노벨상 수상 성적은 1-19가 됐다. 특히 과학분야에서는 0-16의 압도적인 점수 차다.

일본은 1949년 유카와 히데키가 ‘중간자’의 존재를 예측한 공로로 물리학상을 수상한 이후 모두 16명이 과학상을 수상했다. 2000년대 이후는 한마디로 경이적이다. 11명이나 되며 모두 과학 분야였다.

한·일간의 압도적인 노벨과학상 수상 차이는 어디서 생기는 걸까?

우선은 전통의 깊이과 양적인 면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은 19세기말부터 과학자를 유럽에 보내며 기초과학에 일찌감치 눈을 떴다. 노벨상 수상자를 여럿 배출한 이화학연구소도 95년전에 설립됐다. 여기에다 기초와 원리에 충실하고 한 우물을 파는 일본인 특유의 장인정신이 더해졌다.

과학자를 존중하는 일본내 사회적인 분위기도 기여했다. 일본인들은 어릴적부터 노벨상 수상자를 보면서 꿈을 키운다. 지난해 일본의 한 조사에서 남자 어린이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은 결과, ‘학자’는 3위를 차지했다. 4위 ‘의사’보다 앞섰다.

우리나라 과학자들도 노벨상에 근접하고 있다는 점에는 공감한다. 2006년부터는 국가과학자를 선정해 왔고 올해 5월에는 기초과학연구원도 출범했다. 연구단장들의 면면도 드러나고 있다. 선정된 과학자들에게는 장기간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과 자금이 지원된다. 긍정적인 부분이다.

그러나 소수의 저명한 과학자 중심 지원 정책만으로 기초과학이 튼실한 뿌리를 내리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노벨상 수상을 목표로 일부 과학자에게만 자금과 시간이 쏠리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 자칫 창의적인 젊은 과학자들의 모험적인 도전을 막을 수도 있다는 우려다.

‘빨리빨리’ 문화는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됐다. 그러나 기초과학 연구에서만큼은 조급증을 버려야 한다. 과학자들은 연구프로젝트들이 대부분 ‘입찰식 단기투자’에 집중되어 있다고 꼬집는다. 매년 보고서를 써내고 1~2년내에 성과를 내지 못하면 다음 프로젝트를 따기 어렵다.

외계 지적생명체를 탐색하는 세티코리아의 이명현 사무국장(전 연세대 천문대 책임연구원)은 “기초과학은 단기적인 성과나 실용적인 면만 강조하면 안 된다. 기간 내에 무조건 결과가 나와야 하는 식의 연구 진행방식은 탈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입자 물리학자인 이강영 경상대 물리교육과 교수도 “기초과학은 인간의 지식을 늘리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경제적인 이익의 고려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실용적인 차원의 고려도 필요하겠지만 기초과학 본래의 목적을 염두에 두고 정책을 입안해야 한다”고 밝혔다.

양질의 6년근 인삼을 하나 얻으려면 기후와 토양 같은 외적인 조건은 물론, ‘준비기-묘포기-본포기’로 나눠지는 각 시기마다 적절한 관리를 해줘야 한다. ‘환경과 노력, 기다림’이라는 조건이 모두 맞아떨어져야 기초과학이 깊고 넓게 뿌리를 내릴 수 있다. 그러면 노벨상이라는 열매는 자연스럽게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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