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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식로드]죽이면 불법, 죽으면 합법…`고래고기`<15>

전재욱 기자I 2020.11.14 09:00:00

1986년 이후 포경 금지…사인따져 제한적 유통
머리부터 꼬리까지 먹는 별미…죽은 고기라서 신선도 우려
도살은 안되고, 유통은 되는 유일한 나라 한국

음식은 문화입니다. 문화는 상대적입니다. 평가 대상이 아니죠. 이런 터에 괴상한 음식(괴식·怪食)은 단어 자체로서 모순일 겁니다. 모순이 비롯한 배경을 함께 짚어보시지요. 모순에 빠지지 않도록요. <편집자주>
영화 백경 포스터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고래는 죽어야 먹는다. 모든 고기가 ‘죽은 짐승’ 살이긴 할진대, 결이 다르다. 먹으려고 죽인 게 아니라, 죽어서 먹는 게 고래 고기다. 한국은 1986년부터 포경을 금지했으니 이후로 그랬다. 고래 개체 수를 보호하려는 국제 협약에 따른 것이다. 혼획(다른 어류와 함께 잡힘)하거나 좌초(해안가로 밀려듦)해 명을 다한 것만 먹을 수 있다. 표류(죽어서 떠다님)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먹는다. 자연사든 사고사든 상관없다. 포경이 아니어야 한다.

그래서 죽은 고래는 일종의 부검을 받는다. 그물에 걸려 익사했는지, 유영하다가 선박에 부딪혀 죽었는지, 나이가 들어 숨이 끊겼는지 따진다. 해양경찰이 이 일을 한다. 문제가 없으면 ‘고래류 유통증명서’를 발급한다. 서류가 없는 고래는 불법 포획 희생양이다. 우리 법은 희생된 고래를 묻어주고(이미 팔렸으면 매매가를 국고로 환수), 가해자는 최대 징역 3년이나 벌금 3000만원 이하로 처벌한다.

고래 부위별 고기.(사진=장생포 고래문화특구 홈페이지)
지난한 과정을 거쳐 식탁에 오른 고래 고기는 버릴 게 없다. 고래 꼬리를 제일로 꼽는 이들이 많다. 아래턱에서 배꼽까지 부위(흔히 수염이라 부르는 부분)를 일컫는 ‘우네’도 으뜸으로 친다. 잇몸과 혀도 별미다. 내장(위, 콩팥, 창자)과 외피(껍질, 꼬리)도 빠지지 않는다. 부위는 세분하기에 따라 12가지까지 된다. 먹는 방법도 다채롭다. 날(회, 육회)로, 삶아서(수육), 구워서(불고기), 절여서 먹는다. 포경 기지 명맥을 이어가는 장생포 고래문화특구에 따르면, 우네와 고래껍질은 돼지고기와 비슷한 맛이 나고 살코기를 육회로 먹으면 소고기보다 부드럽다고 한다. 내장에서 쓴맛이 나면 신선도가 좋지 않은 것이다.

고래 고기의 신선도 우려는 태생적 한계다. 유통의 전 단계인 ‘도살’이 불법인 탓이다. 좌초나 표류하던 고래가 언제 숨이 끊겼는지 알 길이 없다. 통상 신선식품 신선도는 시간과 반비례한다. 모든 동물은 죽으면 근육이 굳고서(사후경직), 살이 썩는(부패)다. 사후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 과정이 빨라진다.

고래 몸값이 대체로 비싼 것은 이런 측면도 있다. 어쩌다 죽은 귀한 고래가 신선도까지 좋으면 부르는 게 값이다. 2016년 9톤짜리 참고래가 경매에서 3억1200만원에 팔리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불법 유혹에 빠지기 쉽다. 도살부터 유통까지 시간이 줄어들어 선도가 좋기 때문이다. 국제포경위원회(IWC) 보고서를 보면 2011년 규정 위반 23건 가운데 21건이 한국 해역에서 발생했다.

고래 ‘도살’은 불법이고, 고래 고기 ‘유통’은 부분 합법이라서 벌어지는 일이다. ‘포경으로 잡은 고래 고기가 아닌 혼획으로 잡힌 고래 고기가 유통되는 나라는 일본과 한국’(혼획 고래 유통 이력 추적을 위한 제도 개선 방안 연구, 해양정책연구 33권 2호)뿐이었다. 이제는 한국이 유일하다. 일본은 2018년 IWC를 탈퇴하고 상업 포경을 합법화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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