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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례 공천개혁]언제까지 사천?… ‘순위투표’ 등 상향식 공천 도입해야

김미영 기자I 2019.01.14 05:00:00

여야, 대동소이한 과정 거쳐 공천…제대로 된 견제 없어 잡음 계속
“선거 60일 전 공천…대의원 투표,일반당원 경선 등 도입해야”
“당 지도부, 공천개혁 의지 보여야…바깥 압박도 계속돼야”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촉구하는 민주평화당(사진=뉴시스)
[이데일리 김미영 기자] 지역구 의원이 아니라서 한때는 ‘전국구’로 불렸던 비례대표 국회의원들. 최근에는 국민들의 정당 투표로 총선에서 선출되는 만큼 ‘전국구’란 이름을 쓰진 않아도 사실상 전국구 의원이다.

하지만 비례대표 의원 선출에 국민 뜻이 오롯이 반영된다고 보긴 어렵다. 현재는 각 정당에서 비례대표 후보자와 후보자 순번을 결정해 국민에 ‘통보’하는 방식인 까닭이다. 예컨대 A 정당에 투표하는 유권자는 A 정당이 내민 비례대표 후보 명부상 당선권에 있는 B 비례대표 후보자의 당선을 원치 않더라도 B 후보자의 당선에 일조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로의 선거제 개편과 의원정수 증원 논의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비례대표 공천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요구는 그래서 나온다.

지난 2016년 20대 총선을 되짚어보면, 여야 모두 비례대표 공천은 크게 다를 바 없는 과정을 거쳤다. 각계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공천 신청을 받는 한편, 지도부가 나서 인재를 영입하고 추천도 받았다. 선거를 한두 달 앞두고 당에 구성된 공천관리위원회에 맡기거나, 별도로 만든 비례대표공천심사위 혹은 비례대표후보자추천위에서 심사를 벌였다. 국민공천배심원단 등에 의해 공천에 대한 견제·감시를 받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형식적이었다는 평가가 높았고, 실제로도 당 주요 인사 입김대로 순번이 확정돼 ‘사천’(私薦) 논란을 끊어내지 못했다. 명단이 발표된 이후엔 일부 후보자들에 대한 자질 시비가 붙으면서 ‘부실 검증’ 논란이 되풀이됐다.

각 정당의 고유한 권한인 공천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나 시민단체 등이 개입을 할 여지가 없어 제대로 된 견제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공천을 사고 팔았던 과거보다 나아졌다고 할 순 있지만 공천의 투명성, 공정성 담보 면에선 여전히 부족하단 게 정치권 안팎의 중론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선거제 논의가 본격화한 현 시점에서 비례대표 공천제의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경실련(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서 내놓은 제안은 그간 논의됐던 개선안들의 종합판 성격이라 주목할 만하다.

경실련은 지난 8일 낸 의견서에서 비례대표 의원 선출 기한 법률 규정, 상향식 공천을 통한 명부 작성 의무화 등을 정치권에 요구했다. 비례대표는 권역별로 후보자 명부를 제출하되, 명부 제출 기한은 선거일 전 60일로 법률에 규정해야 한다는 게 경실련의 주장이다. 유권자로 하여금 비례대표 후보를 검증할 수 있는 기간을 충분히 줘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또한 명부 작성 시 정당의 대의기관에서 반드시 순위투표를 통해 결정하도록 의무화하는 등 ‘상향식 공천’ 절차를 두도록 했다. 대의원 투표나 일반당원 투표 또는 오픈프라이머리와 같은 방식을 택하라는 압박이다. 지도부의 판단에 따른 ‘전략공천’ 등 예외는 두지 못하도록 못 박았다. 경실련은 “공직선거법엔 ‘정당의 후보자 추천 과정은 민주적 절차에 따라야 한다’고 돼 있지만 실제론 지도부와 공천위에서 하향식 공천을 하는 게 현실”이라며 “정치 신인을 등용한다면서 계파별 보스들에게 줄선 사람을 낙점해 기존 정치인과의 차별성을 찾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이와 함께 상향식 공천을 위한 경선의 관리는 정당이 아닌 중앙선관위에 맡기고, 경선 부정행위가 적발되면 엄격히 처벌하도록 했다.

다만 이러한 상향식 공천안을 법으로 명시할지를 두고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갈린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대표는 “독일은 비례대표 명부 작성 때 당원 비밀투표와 대의원 비밀투표 절차, 지키지 않을 경우 정당의 후보 등록 불가 등의 법조항을 두고 있다”며 “우리도 당원 비밀투표, 지지자 비밀투표, 국민참여 경선 등 두서너 방법을 공직선거법에 담아 각 정당이 실정에 맞게 택하게 하고 지키지 않으면 정당 국고보조금을 삭감하는 등의 방법을 도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정당 자율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당원투표든 어떤 형태로든 민주적으로 명부와 순위를 추인받는 절차가 필요하지만 법으로 강제하기보단 정당에 맡기는 게 맞다”고 했다. 강 교수는 경선을 통한 비례대표 결정 방식을 두곤 “100% 경선을 통해 순위를 정하면 사회적 약자의 참여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며 “전략적 측면에서 배려해 적절한 균형을 맞추되 민주적 절차를 담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방법론을 두고는 이견이 있지만 ‘상향식 공천’이란 방향성을 두고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일치한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20대 총선 비례대표 공천은 19대 때보다 후퇴한 감이 있다”며 “비례대표 공천제의 손질엔 당대표를 중심으로 각 당 지도부의 의지가 굉장히 중요하다. 정치권에만 맡겨놓을 게 아니라 시민사회와 언론 등 바깥의 압박도 계속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이광재 사무총장도 “당원들이 비례대표 명부 순위를 정할 수 있도록 하는 건 선택이 아닌 필수로, 이 작업을 거쳐야 선거제 개편 논의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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