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굽기도 과학이다”…AI가 구우면 안 타는 이유
비욘드허니컴의 고기 굽는 AI 로봇 ‘그릴X’
고기 표면의 분자 상태 파악…화학반응 분석해 고기 구워
미국 시장 진출 및 홈 디바이스로의 확대도 꾀해
“버튼 하나로 유명 셰프가 구운 고기 맛볼 수 있게 만들 것”
챗GPT, 딥시크 대란에 다들 놀라셨나요? 이처럼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기술 외에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 주변에는 수많은 인공지능(AI) 기술이 침투해 있습니다. 음식도 AI가 만들고 몸 건강도 AI가 측정하는 시대입니다. ‘AI침투보고서’는 예상치 못한 곳에 들어와 있는 AI 스타트업 기술들을 소개합니다.<편집자주>
 | 13일 서울 용산구의 고깃집 ‘용돼지’에서 고기 굽는 AI 로봇 ‘그릴X’가 두꺼운 삼겹살을 굽고 있다.(사진=김세연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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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세연 기자] 적어도 두께가 6㎝가 넘어보이는 두꺼운 고기를 그물 모양의 와이어 그릴 위로 올린다. 작동 버튼을 누르자 그릴이 스스로 움직여 불판 위로 간다. ‘치이익’하는 소리와 함께 삼겹살이 그을려지기 시작하고 불판 위에 달린 16개의 작은 점이 고기의 마이야르 반응(음식 조리 과정에서 색이 갈색으로 변하면서 독특한 풍미가 나타나는 현상)과 굽기 정도 등을 측정한다. 이제 이 그릴 로봇은 고기를 최상의 육즙 상태, 최고로 맛있는 상태로 구워낼 예정이다. 비욘드허니컴의 인공지능(AI) 그릴 로봇 ‘그릴X’다.
◇고기의 맛 수치화…픽셀 단위로 고기 표면 확인
AI로 맛있는 고기를 구워내려면 우선 필요한 것은 ‘맛있는 고기의 기준’이다. 비욘드허니컴은 맛있는 고기를 수치로 표현하기 위해 셰프와 AI 전문가 그룹을 구성해 연구를 진행했다. 약 1만5000회에 달하는 조리테스트를 진행하며 고기 부위, 양념·숙성 여부, 불판 구조 등 조합에 따른 데이터를 구축했다. 이를 통해 확보한 푸드데이터는 50만건이 넘는다.
겉은 바삭하고 속에는 육즙이 가득한 바로 그런 상태. 여기에 도달하기까지 굽는 과정을 단계별로 관찰하고 단계별 고기 상태, 즉 표면의 분자 상태를 측정했다. 고기에 열을 가하면 일어나는 화학반응 ‘마이야르 반응’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 관찰하는 개념이다.
고기 세포가 불을 만나면 새로운 화학 물질을 생성하기도 하고 세포 상태가 변하기도 한다. 그릴X의 분자 센서는 단계별 이상적인 화학반응을 기억한다. 아울러 고기의 육즙 정도, 지방과 콜라겐의 상태, 불에 그을린 정도 등을 함께 살펴본다. 육즙이 너무 빠지지는 않았는지, 수분 함량은 어느 정도 되는지도 모두 고기 분자를 분석해 수치로 기억하는 원리다.
◇맛있는 고기를 ‘숫자’로 기억하는 AI…굽기만 하면 완성
 | 13일 서울 용산구의 고깃집 ‘용돼지’에서 ‘그릴X’가 삼겹살을 굽고 있으며 사진을 찍는 시점의 완성도는 27%이다.(사진=김세연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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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릴X는 고기 표면의 분자 상태를 보면 현재 육즙은 몇 %이고 맛있는 고기로 완성되기까지 마이야르 반응은 몇 % 진행됐으며 지방과 콜라겐은 몇 % 유지되고 있는지 ‘숫자’를 기억한다. 이 숫자를 기반으로 가장 맛있는 상태의 고기로 완성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스스로 판단한다. 몇 초 후 고기를 뒤집는 게 좋을지, 몇 분 후 고기 굽기를 완성할지 결정한 후 실행에 옮긴다. 스스로 와이어 그릴을 뒤집어가며 고기를 구우면 그릴X 화면에 나타나는 고기 완성도는 100%를 향해간다.
 | 13일 서울 용산구의 고깃집 ‘용돼지’에서 ‘그릴X’가 삼겹살을 다 구워냈다. 화면에는 완성도 100%이며 왼쪽 하단에는 현재 삼겹살 상태를 찍은 열화상 화면이 있다.(사진=김세연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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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릴X는 삼겹살부터 항정살, 돼지갈비, 채끝 스테이크 등 고기류부터 장어 등 생선류까지 수십 가지 종류의 구이 음식을 만들 수 있다.
비욘드허니컴은 그릴X를 도입하려는 사업장의 수요에 맞춰 원하는 고기 종류와 굽기 정도를 의논한 후 맞춤형 그릴X 소프트웨어(SW)를 제작해 임대 제공한다.
비욘드허니컴은 국내 식음료 시장뿐만 아니라 스테이크의 강국 미국 시장으로의 진출도 꾀하고 있다. 나중에는 가정용 시장에도 진출해 버튼만 누르면 유명 셰프의 조리법대로 집에서 고기를 먹게 되는 미래를 이끌 것이라는 포부도 밝혔다. 잠깐 한 눈 판 사이에 고기가 타버리는 아찔한 상황은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