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인경 기자] 현대차그룹이 한국전력의 삼성동 부지에 10조5500억원을 베팅하면서 국내 자산운용사들이 그야말로 ‘멘탈 붕괴’ 상황을 겪고 있다. 현대차가 코스피 시가총액에서 두 번째 규모를 차지하는 만큼, 대부분의 운용사 포트폴리오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예상밖의 결정’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이다.
20일 마켓포인트에 따르면 지난 19일 현대차(005380)는 전거래일보다 1.52%(3000원) 내린 19만5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현대모비스(012330)도 1.56% 내렸다. 기아차만 0.92% 오르며 간신히 체면치레를 했다.
한 대형주 위주 자산운용사 주식운용본부장 A씨는 “현대차의 한전 부지 매각은 황제경영의 진수를 보여줬다”고 평가한다.
설비 투자나 배당을 바라는 주주들의 의견과 전혀 상관 없이 오너의 결정으로 10조원이라는 자금을 쓰게 됐다는 것. A 본부장은 “당장 언제 주식을 처분할 지 모르는 일반 주주보다는 오너의 체면을 세우는 걸 택했다고 해석한다”고 말했다.
대형주 펀드를 맡고 있는 주식운용팀장 B씨는 “이렇게 되면 외국인들이 한국 주식을 뭐라 생각하겠느냐”며 “가뜩이나 달러 강세니 금리인상이니 불안한 와중에 한국 기업에 대한 불신이 커지며 외국인의 이탈세를 높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B 팀장은 “대형주 펀드로 보면 이번 분기는 최악”이라며 “삼성전자 실적 문제는 예상이나 했지만 현대차의 이번 결정은 자다가 한 대 얻어 맞은 격”이라고 말했다.
대형주 펀드 만이 아니다. 최근 현대차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배 수준으로 낮아지며 가치주 펀드에도 현대차의 비중이 크다. 현금성 자산이 30조원 쌓여있다는 분석에 배당주 펀드 역시 현대차와 그 우선주를 담아뒀다 .
가치주에 주목하는 주식운용본부장 C씨는 “결과적으로 현대차 현금 털어서 ‘회장님 주식’인 현대글로비스만 올리고 있다”며 “경영 목표가 기업 가치 증대인 점만 감안했어도 이런 결정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일각에서는 현대차에서 모종의 ‘딜’을 했을 것이라는 음모론 까지 제기됐다. 인덱스펀드를 운용하는 운용역 D씨는 “한전은 부채를 갚을 수 있고 정부의 경기부양 측면에서는 어마어마한 이득”이라며 “삼성이 써 낸 가격이 확인될 때 까지 의혹이 나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앞으로 투신이 현대차의 비중을 줄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운용업계(투신)은 현대차가 낙찰을 받은 18일 하루 동안 현대차 3인방을 총 1680억원 팔기도 했다.
A 본부장은 “일부 털어내기도 했지만 액티브 펀드 입장에서 현대차를 아예 비우고 갈 수는 없다”며 “단기간 반등하기는 힘들어도 일단 이번 매입에 대한 것은 이미 주가에 다 반영됐다”고 평가했다.
C 본부장은 “기존 주주 입장에서는 배신을 당한 격이지만 새로 들어올 사람들 입장에서는 가격도 저렴하고 한전 부지도 공짜로 산 셈”이라며 “가격 매력은 확실히 있는 구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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