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난 사모펀드 심사역이 늘어놓은 푸념이다. 최근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 이어 홈플러스 기업회생 신청으로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가 이슈가 되다 보니 사모펀드에 대한 이미지가 사채꾼으로 굳어지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사모펀드의 투자를 받으면 기업 망가지는 건 순식간 아니냐는 거부감 가득한 반응이 상당하다고 한다.
|
최근 설문조사를 마치고 결과를 토대로 각 부문별 1위를 한 곳들에게 수상 소식을 전달하자 LP들이 뽑아준 상이라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스럽다는 곳이 상당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지금은 잘했다고 해도 타깃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금융당국은 물론이고 국회의원실에서도 계속 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있고, 사모펀드를 대상으로 전수 조사를 실시하겠다고 하니 몸을 사리는 게 당연하다.
사모펀드들이 이렇게 위축되면서 딜 소화도 잘 안되고 있다. 매도측과 매수측의 몸값에 대한 시각 차이도 있지만, 눈치보기 나선 국내 PEF들이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못하는 이유도 크다. 대형 딜에 뛰어들었다가 괜히 눈에 띄는 것보다는 당분간 조용히 있는 게 낫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CJ제일제당의 바이오그린 사업부, SK에코플랜트의 환경 사업부, DIG에어가스, 롯데카드, 클래시스, HPSP 등 조단위 매물들이 새 주인을 찾고 있지만 원매자로는 글로벌 PEF들이 주로 거론되는 이유다. 그 사이 투자가 필요하거나 사업부를 매각해야 하는 기업들은 시간을 흘려보낼 수밖에 없다.
홈플러스 사태는 사실 사모펀드 제도나 기능의 문제라기 보다는 특정 사모펀드, 특정 사례의 문제다. 이번 사태로 사모펀드의 순기능이 묻히는 게 한편으로는 안타깝다. 사모펀드는 유동성이 부족한 기업에 적기에 자금을 공급해 위기를 넘길 수 있도록 돕거나 경영권 바이아웃을 통해 기업을 인수한 후 기업통합(PMI) 작업을 통해 체질을 완전히 바꿔놓기도 한다.
LP들의 운용 수익률을 높여주는 데에도 기여했다. 블라인드펀드의 내부수익률(IRR)이 두자릿수인 경우가 수두룩하다. 이런 순기능을 못 본 척하고 다 싸잡아 매도할 필요는 없다.
MBK파트너스에게 홈플러스나 네파, 딜라이브 등은 아픈 손가락이었지만 두산공작기계, ING생명처럼 잘 키워서 높은 수익률로 엑시트했던 사례도 있다.
사모펀드 업계 스스로도 지금의 기업사냥꾼 이미지를 벗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야겠지만, 사모펀드가 순기능을 이어갈 수 있게 환경을 조성해줄 필요도 있다. 자율성은 사모펀드가 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핵심 요인이기도 하다.
나무만 볼 게 아니라 전체 숲을 봐야 할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