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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스타in 박미애 기자]“십만 관객이 박수 응원하는 가운데 엄복동과 황수복은 다른 선수보다 앞서 나가다가 다른 선수의 쫓아옴을 보고 더욱 용맹을 내어 넓은 경주장을 겨우 이십이 분에 스무 번을 돌아 우리가 애독자 제군과 기다리고 바라던 전조선대경주회의 명예 있는 일등은 마침내 엄복동에게 떨어지고 황수복도 삼등을 점령하며 다정다한(多情多恨)한 십만 동포의 박수 갈채하는가운데…”
1913년 4월15일자 매일신보에 실린 기사다. 엄복동이 자전거 경주 대회에서 1등을 했다는 내용이다. 엄복동은 이 대회를 계기로 연승 행진을 이으며 민족의 영웅으로 떠오른다. 인물의 행적을 둘러싼 논란이 있지만 엄혹한 시절에 자전거 하나로 일본 선수들을 물리치고 민족의 긍지를 일깨운 인물임을 분명하다.
엄복동이 스크린에 부활한다.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만나는 ‘자전차왕 엄복동’이다. “세상을 바꾸는 일이 총, 칼만 있는 게 아니다”는 이범수(황채호 역)의 극중 대사처럼 ‘자전차왕 엄복동’은, 스포츠로 민족의 사기를 드높인 점에서 앞선 많은 일제강점기를 다룬 영화들과 차별된다. 이 영화는 엄복동의 자전거 경주와 무장독립운동단체의 활약, ‘투 트랙’으로 이야기를 펼쳐진다. 하지만 자전거 경주를 통해서 한 평범한 청년의 마음에 깃들게 된 투지에 더 관심을 쏟는다. 한 마디로 ‘자전차왕 엄복동’은 엄복동이 자전거 영웅으로 성장하는 스토리다.
‘자전차왕 엄복동’은 스포츠 영화(그것도 항일전이라는)로 외피를 둘렀다는 점에서도 다른 항일 영화들과 차별된다. 엄복동이 격렬하게 질주하다 일본 선수들과 부딪치거나 방해를 받을 때, 결승선을 눈앞에 두고서 넘어질 때, “복동아 지금이야”라는 말에 스퍼트를 올릴 때에는 손에 땀이 밴다. 스포츠 영화의 묘미다.
‘자전차왕 엄복동’은 정지훈의 7년 만의 스크린 복귀 영화로도 관심을 모은다. 엄복동이 된 정지훈에게서 무대 위 화려한 퍼포머 비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자전거밖에 모르는 순박한 얼굴의 엄복동을 완성시켰다. 강소라는 여성 독립군에 도전했다. 고난도 액션을 무리 없이 소화했는데, 광채 나는 피부가 그 이상으로 인상적(?)이다. 독립군의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광채 피부가 캐릭터 몰입을 방해한다.
한때는 민족의 영웅이었지만 엄복동은 어렵게 말년을 보냈다고 전해진다. 엄복동이 절도 사건에 연루되면서 인물에 대한 평가도 ‘자전거 영웅’ vs ‘자전거 도둑’으로 극명히 갈린다. 더불어 영화에 대한 호불호도 나뉜다. 누구는 ‘애국영화’라, 또 누구는 ‘국뽕영화’라 말한다.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자전차왕 엄복동’은 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의 투자·제작·배급영화다. 러닝타임 118분. 등급 12세 관람가. 오는 27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