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가족’은 각자의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던 네 사람이 아이들의 범죄현장이 담긴 CCTV를 보게 되면서 모든 것이 무너져가는 모습을 담은 웰메이드 서스펜스다. 네덜란드 작가 헤르만 코흐의 베스트셀러 소설 ‘더 디너’를 원작으로 한국적 정서에 맞게 각색했다. ‘보통의 가족’은 지난해 열린 제48회 토론토 국제영화제를 통해 먼저 공개된후 일찍이 해외 평단 및 관객들의 극찬을 받으며 입소문을 탔던 작품이다. 영화의 뼈대가 된 원작 소설 ‘더 디너’는 사실 이전에도 여러 국가에서 수차례 리메이크된 바 있다. 명성이 있는 IP(지식재산)였기에 국내외 영화팬들의 기대만큼 우려도 컸다.
토론토국제영화제 초청 후 약 1년 만인 24일 국내 시사회를 통해 베일을 벗은 ‘보통의 가족’은 다행히 리메이크 영화의 딜레마를 충실히 해소했다. 원작의 기본 틀에 한국의 정서와 사회문제, 적절한 위트를 섞어 새로운 색깔을 빚어낸다.
뛰어난 음악, 원거리와 타이트를 가쁘게 오가는 앵글의 전환, 네 배우의 폭발적 앙상블이 조화롭게 시너지를 발휘했다. 여기에 중간중간 긴장을 환기시킬 유머, 풍자 요소 및 대사들까지 적재적소에 배치돼 러닝타임 109분을 힘있고 몰입감있게 이끈다.
설경구, 장동건, 김희애, 수현 네 배우는 물론 자식 역할을 맡은 아역들까지 영화에 등장한 모든 배역들이 구멍없는 열연으로 웰메이드 서스펜스를 끌어낸다. 특히 이 작품으로 오랜만에 스크린에 컴백한 장동건의 연기 변신이 경이롭다. 장동건이 연기한 ‘재규’는 아이들의 범죄 현장을 맞닥뜨린 후 네 인물 중 가장 급격한 심리 및 감정 변화를 겪는 인물이다. 때론 가족 구성원의 원성을 들으면서까지 정의감과 도덕성을 고집스레 고수해온 재규가 내 자식의 범죄를 맞닥뜨린 후 고뇌하다 감정을 폭발시키며 끝내 민낯을 드러내는 역동적 과정을 설득력있게 그렸다. 아이의 부모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줄곧 이성적이고 냉철한 ‘재완’을 연기한 설경구의 열연은 4인 앙상블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균형점이 되어준다. 여유로운 듯 치열히 대립하는 설경구와 장동건의 케미스트리가 4인의 갈등과 입장 전복, 파국의 엔딩까지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희애가 연기한 ‘연경’은 자식과 가족에 헌신하는 모성의 맹목적 감정을 현실감있게 대변하는 캐릭터다. 우애 깊고 잘난 형제들이 자식의 문제 앞에 지나치게 이성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모습에 연경이 ‘돌아버리겠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갑작스레 굴러들어온 어린 형님(지수) 앞에 눈을 흘기며 기싸움을 시전하는 면모 등은 뜻밖의 유머 요소로도 활약한다.
수현이 연기한 ‘지수’는 설정상 상황에서 한 발짝 떨어진 인물인 만큼, 연기를 하면서도 동떨어져 보일 우려가 있는 어려움 많은 캐릭터다. 그럼에도 수현은 세 배우의 텐션 경쟁에 적절히 뛰어들며 중립자이자 관찰자, 관객의 의구심을 대변하는 대변자로서 캐릭터의 기능과 역량을 충실히 발휘했다.
그 끝에 남는 건 날카로운 질문과 묵직한 여운이다. 혈연 가족의 헌신적 유대가 개인의 양심과 충돌할 때, 가족 구성원과 사회 구성원으로서 미덕이 어긋날 때 우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다소 불편하고 찝찝하지만, 삶을 살며 한 번쯤은 고민해봐야 할 화두를 던지는 작품이다.
10월 개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09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