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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은 이야기는 진부한데 그 접근법은 ‘뻔’하지 않다. 재난영화의 상투적인 공식을 따르지 않아서 ‘펀’하다. 징후를 알리는 전조에 시간을 끌거나 주인공의 영웅담에 치중하지 않는다. 영화가 시작하면 마음의 준비를 할 틈도 없이 터널이 무너진다. 주인공은 재난 앞에 무력하다. 그래서 리얼하다.
‘터널’은 1인 재난극이다. 원작인 소설의 방식을 영화도 취했다. 1인 재난극이어서 재난보다 사람에 주목한다. 주인공을 타자화해 재난을 관망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의 시점에서 재난을 자신의 일처럼 느끼게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주인공의 심리변화에 더 몰입되는 이유다. 당장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내 몸 하나 똑바로 뻗기 힘든 위험하고 어둡고 좁은 공간은 절로 공포감과 답답함 긴장감을 높인다. 터널 외부에서 바라보는 재난현장의 이미지에 대해서도 공을 들였지만, 주인공이 갇혀 있는 터널 내부 공간을 축소시키고 망가뜨리는 방식으로 붕괴 효과를 줘 긴장감을 주기도 했다.
영화는 초반에 터널이 무너지는 탓에 2시간 가까이 재난 이후의 상황을 묘사한다. 정수는 끊임없이 목숨의 위협을 받고 그 순간에도 인간성의 시험대에 오른다. 재난 이후의 상황을 이끄는 중요한 동력은 유머다. 정수가 ‘터널이 무너졌다’고 ‘사람이 갇혔다’고 절박하게 알리는데 휴대전화 너머의 구조원은 “이름이 뭐냐”며 느긋하게 묻는다. 정수가 “그런 거 묻지 말고 빨리 와주세요”라고 말하는데 이상하게 웃음이 터진다. 이런 식의 블랙 코미디가 쉴 새 없이 이어진다. 터널 안과 밖을 교대로 비추는 방식도 극에 활력을 더한다. 터널 안의 정수는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데 터널 밖의 사람들은 ‘염불보다 잿밥’이다. 고위 공무원들의 기념촬영이, 언론의 취재경쟁이 ‘웃픈’ 데는 영화 속 장면이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다. 구조작업이 지연되고 그에 따른 경제적 손실과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면서 터널 밖의 사람들이 ‘이 한 사람 때문에…’라며 이해득실을 따지는 대목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 외부와 단절된 상황에서 “나 아직 살아있는데…”라며 정수가 망연자실 하는 장면은 가슴이 저릿하다.
‘터널’은 하정우의 활약이 큰 영화다. 하정우는 ‘더 테러 라이브’에 이어 또 한 번 1인 재난극을 선보인다. 터널 안의 상황이 단조로울 수 있었다. 하정우는 감정 변화의 적절한 안배로, 끊임없는 자세 변경과 위치 변경으로 단조로움을 피했다. 그의 코믹 연기는 역시나 위력적이다. 오달수와 배두나의 롤은 아쉽다. 터널의 밖에서 정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이들의 롤이 더 컸다면 메시지가 더 강하게 와닿지 않았을까. 러닝타임 126분. 등급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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