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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에는 잭 블랙이 주연을 맡은 영화 ‘나초 리브레’가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고아들을 돌보기 위해 저녁때마다 복면을 쓰고 프로레슬링 링에 올랐던 멕시코 신부님이 주인공이다.
왜 갑자기 송강호와 잭 블랙 얘기를 하느냐고? 그들의 얘기는 단지 영화 속 스토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2024년 우리 주변에도 ‘반칙왕’은 존재한다. 주인공은 국내 프로레슬링 단체 PWS(PRO WRESTLING SOCIETY)에서 활약 중인 미국 출신 여성 레슬러 ‘포이즌 로즈(독장미)’다.
포이즌 로즈는 살벌한 이름과 어울리게 전형적인 악당이다. 아리따운 금발의 미녀지만 경기가 시작되면 거만하고 얄밉게 상대를 도발하고 조롱한다. 관중들 야유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야유를 즐긴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반칙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데 낮에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그의 본명은 말로리 존스. 미국 코네티컷주에서 온 원어민 영어 선생님이다. 현재 영어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에서 원어민 교사로 일한 지 벌써 8년이 됐다. 워낙 아이들을 좋아하고 소통을 잘하다 보니 그쪽 바닥에선 인기가 높다.
상냥하고 친절한 원어민 영어 선생님이 왜 프로레슬러가 됐을까. 게다가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일본과 달리 프로레슬링이 여전히 ‘음지의 스포츠’다. 시장 자체가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악당 프로레슬러’ 포이즌 로즈와 ‘원어민 영어 선생님’ 말로리 존스, 같지만 다른 두 인물 모두 궁금했다. 그래서 링이 아닌 사석에서 그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금부터 편의상 링 네임인 포이즌 로즈로 부르기로 한다)
포이즌 로즈는 한국 생활 8년 차 답게 한국어가 능숙했다. 우리 말이 서툰 줄 알고 처음에 엉성한 영어로 질문했던 게 부끄러울 정도였다.
“미국에 있을 때부터 한국 문화와 음식에 관심이 많았어요. 다른 나라에서 살면서 외국어를 배우고 싶은 마음도 컸구요. 사실 미국에 있을 때는 프로레슬링에 대해 전혀 몰랐죠. 한국에 오고 나서 뭔가 역동적인 취미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마침 지금의 PWS 단체를 만나게 됐고 훈련을 시작했죠”
한국 프로레슬링이 열악하고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물론 버는 수입도 거의 없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프로레슬링이 주는 매력에 푹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실 프로레슬링으로 돈을 버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열심히 훈련하고 이를 경기에서 보여주면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좋아해주죠. 그것으로 충분히 만족해요. 학교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경제적인 부분은 크게 문제되지 않아요”
물론 주중에 학생들을 가르치고 주말에 프로레슬링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스스로도 “솔직히 너무 바쁘다”고 말한 뒤 살짝 한숨을 쉴 정도다. 그래도 지금 생활이 너무 즐겁고 만족스럽단다. 평일에도 업무가 끝나면 웨이트 트레이닝 등 개인 운동을 빠뜨리지 않는다.
“프로레슬링에선 저의 더 강하고 거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요. 선생님과 프로레슬러, 두 가지 모두 내 모습인거죠. 프로레슬링에선 최대한 그 캐릭터에 몰두하려고 해요. 일상에선 느낄 수 없는 쾌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포이즌 로즈는 어린 시절 댄스, 축구, 농구, 테니스 등 다양한 운동을 접했다. 특히 수년간 기계체조를 했던 경험이 프로레슬러로 활동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레슬링 경력이 짧은데도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던 데는 체조로 익힌 운동신경 덕이 컸다.
포이즌 로즈의 주특기는 ‘스터너’다. 상대 목을 두 팔로 잡고 자신의 어깨에 찧는 기술이다. WWE에선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의 피니시 기술로 유명하다. 언젠가는 스톤콜드처럼 세계적인 선수가 돼 더 큰 무대에서 이름을 알리고 싶은 마음도 있다.
“지금도 프로레슬링을 배우는 단계에요. 아직은 많이 서툴죠. 그래도 더 많은 기술을 펼치고, 좋은 경기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거의 매주 경기를 치르는데 할 때마다 에너지가 솟는 느낌을 받아요. 이 기분을 계속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