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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SPN 김용운기자] 남녀의 자극적인 정사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그 흔한 키스 신도 없다. 미술관 안에서 총격전이 벌어지지만 폭력의 강도는 12세 관람가의 여는 전쟁영화 그 이하다. 지난 2월5일 베를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톰 튀크베어 감독의 신작 '인터내셔널'에 관한 이야기다.
이 작품은 국내 수입과정에서 영상물심의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로부터 “영상의 표현에 있어 폭력적인 부분이 지극히 자극적이며 거칠게 지속적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일차적인 이유로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 하지만 영화의 폭력성 때문에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주었다는 것은 사실상 핑계다.
‘인터내셔널’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무기를 거래하고, 자신들의 뜻을 거스르는 정치인들을 제거하는 다국적 은행의 음모를 파헤치는 인터폴 수사관 셀린저(클라이브 오웬 분)과 뉴욕 지방검사 엘레노어 휘트먼(나오미 왓츠 분)의 활약상을 담은 작품이다.
영화의 모티브는 1970년대 파키스탄의 BCCI 은행 스캔들에서 따왔다. BCCI 은행은 설립 직후 돈 세탁을 비롯해 중동지역의 무기거래와 테러지원 등을 자행하며 세계적인 금융범죄를 저질렀다. 물론 각국 정부의 비호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0여년간 자행되던 BCCI 은행의 범죄는 1991년 미국과 영국 국회의원들의 비리가 폭로되면서 알려지게 됐다. 한마디로 영화 '인터내셔널'은 적당한 사실과 근거를 가지고 만들어진 작품이다.
‘인터내셔널’ 속의 다국적 은행 ICCB 역시 은행의 이익을 위해 각종 비리와 범죄를 서슴지 않는다. 이는 최근 세계적인 경제 불황을 야기한 다국적 은행들에 대한 은유이다. 실제로 다국적 은행들이 무기거래나 요인암살에 관여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국가든 개인이든 빚의 노예로 만드는 것이 금융산업의 본질”이라며 돈이 목적이 아니라 채무로 인한 지배력을 획득하는 것이 다국적 은행의 목적이라는 영화 속 대사는 충분히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다국적 은행의 만행을 저지하기 위해 주인공 셀린저 요원은 이탈리아와 미국 터키를 누비며 추격전을 펼친다.
영등위의 등급위원들은 영화의 폭력성과 더불어 “주인공이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개인적으로 은행의 불법을 응징을 한다는 점이 청소년들이 관람하기에 부적절한 영화”라며 “청소년이 관람하지 못하도록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영화”라고 덧붙였다. 덕분에 ‘인터내셔널’은 선정적인 장면도 없고 폭력성이 과도하지도 않지만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의 영화가 됐다. 그러나 정작 독일에서는 12세, 영국에서는 15세, 미국에서는 부모를 동반한 17세 이하 관람가인 R 등급을 받았다.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등급판정이다. 게다가 셀린저 요원의 불법적 응징은 성공하지도 못한다.
국내 등급판정 외에 영화 자체로 봤을 때도 아쉬운 점은 있다. 만듦새 자체는 매끈하지만 영화가 말하려 했던 주제만큼 영화의 긴장감과 밀도가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스릴러라는 장르 영화로서도 느슨한 부분이 많다. 또한 영화는 금융산업의 본질과 그 악순환 구조에 대해 등장인물의 대사 외에는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부분도 없다. 다만 오우삼 감독이 제작에 참여한 만큼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펼쳐지는 10여분의 총격장면은 '첩혈쌍웅'이나 '영웅본색'처럼 80년대 홍콩 느와르 영화의 여운이 짙게 느껴져 눈길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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