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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종영한 OCN 드라마 ‘트랩’의 주인공은 악인이었다. 후반부 정체를 드러낸 그는 소시오패스이자 살인마였다. 시청자에게 제대로 한방을 먹인 반전이었다. 대본을 쓴 남상욱 작가(43)에게 왜 악인을 주인공으로 삼았는지 물었다. 남 작가는 마치 기다린 질문이었다는 듯 “악을 직접 경험하는 건 위험하지만, 세상에 그런 일이 있다는 걸 듣는 일은 흥미롭다. 인간의 본능”이라면서 “장르물의 존재 이유”라고 답했다. OCN ‘별순검’ 시리즈, ‘특수사건 전담반 TEN’(2011) 등 장르물이란 한 우물을 파 왔던 그의 치열한 고민이 느껴졌다.
이밖에도 ‘트랩’은 특별한 드라마였다. OCN 드라마틱 시네마 프로젝트의 첫 작품으로, 당초 2시간 분량의 영화 시나리오를 7부작 드라마로 확장 시켰다. 드라마 작가인 남상욱 작가와 영화감독인 박신우 감독이 손을 잡았다. 마지막회 부제처럼 ‘이종’이었다. 아쉬움을 달래듯 지난 10일 감독판도 전파를 탔다.
곳곳에서 색다른 시도도 돋보였다. 인간사냥이란 파격적인 소재, 후반부 정체를 드러낸 소시오패스 주인공, 흐름을 놓치면 이해가 어려운 빠른 전개 등이 여기에 해당했다. 자체 최고 시청률로 유종의 미를 거둔 최종회 시청률 3.992%(닐슨코리아 전국 가구 기준)는 시청자의 화답이기도 했다. 남 작가는 “OCN이라 가능했다”면서 “창작자로서 이런 새로운 경험과 기회가 늘어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하 남상욱 작가와 일문일답이다.
―일반적인 드라마와 달리 7부작이었다. 짧은 분량이 아쉽진 않았나.
△‘별순검’ 시절엔 수사물이 많지 않았다. 모델을 외국에서 많이 찾았다. ‘별순검’ 땐 ‘CSI’와 ‘크리미널 마인드’의 시대였다. 그런 모델을 보면서 드라마 공부를 했던 사람이라 이야기를 압축해 밀도를 높이는 편을 선호한다. 미국 드라마는 호흡이 짧아서 익숙한 작업 방식이다. ‘트랩’은 2시간 분량 영화 시나리오에서 출발했다. 처음에는 아내를 죽인 남자의 이야기였다. 사냥을 당한 줄 알았는데 남자의 자작극이란 반전이 중심이었다. 그런 ‘반전 영화’는 워낙 좋은 작품이 많으니까 다른 무엇이 필요하다 판단했다. 감독님과 이야기하다 보니 살면서 둘 다 소시오패스를 경험한 적이 있더라. 처음 기획서에는 ‘이 이야기는 소시오패스들에 대한 짧은 보고서’란 글귀가 있었다. 7부마다 달리는 부제가 다 소시오패스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다. 강우현(이서진 분)은 진화한 소시오패스다. 모티브가 된 실제 인물은 없지만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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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대본에 ‘731부대’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우리나라나 중국에게 한 짓이 마치 소시오패스와 닮아 있다 생각했다. 그때 자료를 찾아보면 어떻게 인간이 그럴 수 있는가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렇다면 모든 일본 사람이 소시오패스인가 질문한다면 그건 아니다. 시스템의 꼭대기에 있던 사람들이 아닐까. 강우현이 마치 그런 사람이다. 주인공이 알고 보니 소시오패스라는 반전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들의 특징을 말해주고 싶었다. 강우현은 대중의 특징을 활용하고 연구한다. 실제 일본은 그 당시 약물 연구뿐만 아니라 대중 선동 등 심리연구도 많이 한 걸로 안다. 강우현이 그런 사람이라 생각했다.
―고형사(성동일 분)의 비장한 내레이션으로 마무리된다. 시즌2에 대한 암시라면 시즌2에선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나.
△고형사는 강우현을 죽이지 않는다. 강우현은 6개월 안에 해독제를 받아야 살 수 있다. 고형사는 강우현을 죽인다고 해서 악을 뿌리 뽑는 게 아니라고 판단한 거다. 오히려 강우현을 ‘개’로 만든 다음 이용하려고 하는 거다. 그런 이야기들이 펼쳐지지 않을까 싶다. 물론 여건이 맞아야 가능하다.
―‘트랩’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버틸 수밖에 없다’는 대사가 초반에 나온다. 평범한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들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정서를 이용하는 소시오패스들을 우리도 알아야 구별할 수 있고 대안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대중문화는 즉각적이고 배설적인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생각한다. 생각을 하지 않게 만든다. 그렇지만 우리가 왜 지금 힘든지 돌아봐야 한다는 걸, 마지막 고형사의 내레이션으로 전하고 싶었다.
―‘트랩’처럼 드라마와 영화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특수사건 전담반 TEN’도 영화 시나리오에서 시작했다. 이런 시도는 꾸준히 있었다. 일종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작가로서는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트랩’은 총 7부작이지만 각 회별 엔딩에 차별화를 주고 싶었다. 엔딩을 위한 엔딩이 아니라 완결성이 있는 엔딩이었으면 했다. 그런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썼다.
―한편으론 드라마의 제작 편수가 과거와 비교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결국 좋은 드라마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특수사건 전담반 TEN’ 이후 7년의 공백이 있었다. 계속 새로운 작품을 개발했지만 기회가 없었다. 버티는 마음이다. 기회가 더 많아졌다는 점에선 긍정적이다. 세상에 수많은 멜로물이 있지만 변주를 주면서 계속 새로운 것이 나오지 않나. 장르물도 과거 보다 늘어난 만큼 새로운 형태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