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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분야의 세계적 석학 샌드라 프레드먼의 ‘인권의 대전환’(조효제 역)에 나오는 구절이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인권의 실현은 일방통행이 아니라 상호소통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소통에도 조건은 있다. 첫째, 최종 결론은 ‘인권 보호’로 귀결돼야 한다는 것, 둘째, 실행을 위한 소통이어야 한다는 것, 셋째, 소통 과정에서의 권력 관계가 존재함을 인식하고 하위 주체들에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프레드먼의 지적은 소통에 대한 이상적인 기대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다. 사회란 결코 ‘명령과 통제’에 의해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현실을 직시한 결과다. 하물며 한 명의 사람도 변화시키기 쉽지 않은데, 각자의 이해관계로 얽힌 인간 집단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명령과 통제’로 일관하게 되면 “안 그래도 방어적인 조직 구조를 더욱 자극해 그 조직이 오히려 복지부동 식의 태도를 보일지도 모른다.” 한 마디로 ‘심의민주주의’로 표현되는 이 과정은 각 주체들이 실질적 참여를 통해 평등을 경험하고 내면화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스포츠혁신위원회(이하 혁신위)의 활동을 보면 그의 전언이 떠오른다. 이유는 ‘소통’이 부재했다는 판단 때문이다. 물론 이기(利己)를 소통이라는 말로 포장해 개인의 욕구를 채우려는 일부 세력들에게는 일방통행도 필요하다. 만약 상대 세력이 “폭력과 성폭력은 당연한 일이다”, “학생선수는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면 소통의 대상에서 제외해도 무방하다. 소통의 조건인 ‘인권 보호’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혁신위가 출범했던 이유인 스포츠 분야의 (성)폭력 사건은 상당수의 엘리트스포츠 종사자들도 부끄러워하는 일이다. 학습권 보장 문제도 다수가 반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길은 다를지라도 방향은 같은 이들에게 ‘실행을 위한 소통’을 제안할 수 있지 않았을까?
혁신위는 처음부터 활동 내용에 대해 언급을 자제했다. 과정은 보이지 않았고, 권고문이라는 결과만 있었다. 혁신위는 권고문을 위해 현장에 있는 이들과 성실히 논의했다고 주장하지만, 어떤 주체들과 무엇을 주제로 논의를 했는지는 명확히 공개된 바가 없다.
스포츠를 혁신하는 활동이 왜 비밀이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결과론적인 가정이지만, 엘리트스포츠 종사자들이 국가의 정책 결정 과정에 민주적 방식으로 참여했다면 불필요한 반대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혁신위의 진정성과 역량을 믿는다. 혁신위에 참여한 민간위원들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스포츠를 고민해왔고, 바쁜 일상 속에서도 인권이라는 가치를 위해 헌신해왔던 분들이다. 혁신위의 권고문에 담긴 처절한 문제의식에도 공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지점은 뒤늦게야 “체육인들, 우리 소통합시다”라고 호소했다는 점이다. 권고문이 발표된 상황에서, 답을 미리 제시한 시점에서 소통하자고 말하는 건 자칫 ‘답정너’로 오해 받을 소지가 충분하다. 혁신위는 출범 시작부터 소통을 말했어야 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혁신위는 하루 빨리 민주적 소통에 걸 맞는, 다양한 이해 당사자가 참여하는 공적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혁신위의 (2차) 권고문에 반대하는 이들도 감정을 접어두고 공론의 장에 참여해야 한다. 대안 없는 반대는 트집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스포츠를 걱정하는 사람들끼리 티격태격할 필요가 없다. 싸움의 대상은 다른 곳에 있기 때문이다. 현실과 안위를 변명삼아 요지부동하는 기득권 세력은 드러나지 않게, 조용히 이 사태를 관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재영 스포츠문화연구소 운영위원, 스포츠가 인권에 기여하고, 인권이 스포츠에 스며든 세상을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