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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이 파리올림픽까지 오는 여정은 길고 험했다. 태권도는 국제대회 성적을 바탕으로 세계랭킹을 매긴다. 각 체급에서 세계 랭킹 5위 내 선수는 올림픽 자동 출전권이 주어진다.
그런데 한국에는 세계 랭킹 5위 안에 드는 선수는 단 3명 뿐이었다. 지난 8일(한국시간) 남자 58㎏급에서 금메달을 딴 박태준(20·경희대)이 5위고, 오는 9일과 10일 출전하는 서건우(20·한국체대), 이다빈(27·서울특별시청)은 4위다.
올림픽 태권도는 남녀 각각 네 체급씩 총 여덟 체급으로 치러진다. 2012 런던 대회까지는 올림픽 메달이 특정 국가에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해 국가당 남녀 2체급씩, 최대 4명까지 출전할 수 있도록 제한됐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대회부터는 국가별 출전 제한 규정이 폐지됐다. 마음만 먹으면 8개 체급 전부 선수를 출전시킬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한국이 태권도에 내보낼 수 있는 선수 최대 숫자는 4명 뿐이었다. 국가별 출전 선수 제한 규정이 사라진 뒤 역대 최소 인원이었다. 한국은 2016 리우 대회 때는 5명, 2021년에 열린 도쿄 대회에선 6명이 태권도 종목에 참가했다.
대부분 체급에서 5위 내 선수가 없다는 것은 한국 태권도의 위기를 잘 보여주는 결과였다. 국제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도쿄올림픽 ‘노 골드’ 수모가 재현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하늘을 찔렀다.
세계 랭킹 5위 안에 든 선수 3명은 올림픽 자동 출전권을 따냈다. 나머지 1장은 대륙별 선발전을 통해 가져와야 했다. 그런데 한국이 추가로 확보할 수 있는 올림픽 출전 티켓은 여자 1개 체급 뿐이었다. 대륙별 선발전은 남녀 각각 2장 미만 출전권을 딴 국가만 참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남자의 경우 이미 출전권 2장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대륙별 선발전에 선수를 내보낼 수 없었다.
대한태권도협회는 고민에 빠졌다. 과연 어느 체급에 누구를 내보내야 할지 두 차례나 경기력향상위원회 회의를 가졌다. 결국 대륙별 선발전 통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내린 결론은 여자 57kg급이었다. 우리 선수의 기량은 물론 참가가 예상되는 외국 선수의 기량까지 모두 따져본 뒤 내린 결정이었다.
먼저 대륙별 선발전에 나갈 대표를 가리기 위한 별도 내부 선발전이 열렸다. 여기에 통과한 선수가 김유진이었다. 김유진은 지난 3월 아시아 선발전 4강에서 캄보디아의 줄리맘을 라운드 점수 2-0(15-5 12-1)으로 누르고 대회 상위 2명에게 주어지는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김유진은 지난 6월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열린 미디어데이에서 “체급 선정, 국내 선발전을 거치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며 “대륙별 선발전까지 가게 되면서 해내고 돌아와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다. 오히려 올림픽 본선은 별것 아니다”라고 그동안 마음고생을 털어놓았다.
결과적으로 멀고 먼 길을 돌아 돌아 파리에 온 결실은 금메달이었다. 그동안 힘들었던 순간을 싹 날려버린 자양강장제 같은 성과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라는 말이 김유진에게 너무나 잘 맞아 떨어졌다.
김유진은 2000 시드니 대회 정재은, 2004 아테네 대회 장지원, 2008 베이징 대회 임수정에 이어 여자 57kg급 역대 네 번째 한국인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동시에 16년 동안 끊어졌던 이 체급 금메달 명맥도 다시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