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거미집’으로 김지운 감독과 재회한 배우 송강호가 이 작품을 촬영하며 느낀 자부심이다. 송강호는 “팬데믹을 거치며 OTT 등 다양한 콘텐츠로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장점들이 생겼지만, 그만큼 영화의 소중함이 얻어지는 것 같다”며 “이 영화를 통해 영화만이 가진 영화의 매력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고 떠올렸다.
송강호는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영화 ‘거미집’을 개봉을 앞두고 취재진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거미집’은 1970년대, 다 찍은 영화 ‘거미집’의 결말만 바꾸면 걸작이 될 거라 믿는 김열 감독(송강호 분)이 검열, 바뀐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배우와 제작자 등 미치기 일보 직전의 현장에서 촬영을 밀어붙이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그리는 영화다. ‘장화, 홍련’,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 ‘달콤한 인생’ 등을 만든 김지운 감독이 약 5년 만에 내놓는 스크린 작품이다. ‘천박사 퇴마연구소: 설경의 비밀’ ‘1947 보스톤’과 함께 올 추석 연휴 한국 영화 3파전에 뛰어들었다. 앞서 지난 5월 칸 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돼 평단과 매체들의 극찬을 받기도 했다.
송강호는 작품을 통해 영화감독의 역할을 간접 체험해본 소감이 어떻냐는 질문에 “감독 역할이 쉬운 직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예전에 감독이 배우들만 고생시키고 뒤에 앉아 지켜보는, 편해보이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면서도 “이 영화를 찍고 ‘김열’처럼 누구도 책임지지 못할 고통 속에서 결정을 하고 고뇌 속에서 창작 활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 일개 배우가 감당할 몫은 아니구나 실감했다. 이건 어마어마한 세계다, 카메라 뒤가 편한 자리는 아니구나 생각했다”고 떠올렸다.
칸 국제영화제 이후 국내 관객들을 만나는 소감에 대해선 “그동안 못 봐왔던 형식이랄까, 익숙한 패턴의 영화들만 보시다가 이런 생소하고 파격적인 면이 있는 작품을 보셨을 때 어떻게 보실지 등이 궁금하다”며 “저희들 입장에선 사실 ‘영화의 맛’이랄까, 이런 느낌을 받는 게 귀해진 시대인 것 같다. 영화만이 가진 영화의 맛, 에너지를 즐기는 게 오랜만”이라고 전했다.
오랜만에 만난 김지운 감독과의 작업은 ‘반칙왕’, ‘공동경비구역 JSA’ 등 작품들을 찍던, 한국 영화의 황금기로 불리던 1990년대말~2000년대 초반의 촬영 기억을 떠올리게 해 반가웠다고도 회고했다. 송강호는 “김지운 감독은 영화적인 장르의 변주를 통해 늘 새로운 영화를 찍으시다 보니 함께한다는 자체가 설ㅤㄹㅔㅆ다. 한 영화를 찍을 때 영화 여행을 떠난다는 표현을 자주 쓰는 편인데, 이번엔 어떤 여행이 기다리고 있을까 두려우면서 설렘이 컸다”고 회상했다.
이어 “‘조용한 가족’, ‘반칙왕’, 더 나아가 비슷한 시기에 찍은 ‘공동경비구역 JSA’와 ‘살인의 추억’까지. 그 당시 현장에서 느낀 감정을 이번에 다시 느꼈다”며 “25년 전 합을 맞춰가며 열정적으로 촬영했던 그 때 그 설렘, 열정적이고 에너지 넘쳤던 그 때의 느낌을 참 많이 받았다”고 덧붙였다. 특히 여러 배우들과 합을 맞춰 조화로운 앙상블을 이뤄가는 느낌을 오랜만에 받았다고도 강조했다.
자신도 더 좋은 작품을 위한 욕심에 이미 찍은 영화를 수차례 재촬영한 기억이 있다고 털어놨다. 송강호는 “어떤 작품을 8번이나 재촬영을 한 기억이 있다. 결과물이 훨씬 좋았기 때문에 당시 감독님께 ‘이렇게만 나오면 100번이라도 다시 찍겠다’고 말씀드렸다. 그 감독님이 미안해하면서도 고마워하시더라. 그만큼 나는 진심이었다”며 “요즘은 그렇게 할 수가 없는 산업 환경이다. 미리 사전에 완벽히 준비해 촬영장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되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거미집’은 ‘절박함’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라고도 부연했다. 본인이 감독을 해볼 생각은 없는지 묻는 질문에 대해선 “감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것 같다”며 “그런 점에서 감독도 겸할 수 있는 배우들이 부럽다. 아직 나에겐 배우 하나도 벅차다. 다재다능한 능력과 열정 이런 게 내겐 없는 것 같다”고 선을 그었다.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 등 거장들과 오랜 기간 작업하며 ‘송강호’란 이름 자체가 한국영화의 상징이 됐다. 이에 대한 부담은 없을까. 송강호는 “부담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 해서 그 부담에 짓눌리진 않는다”며 “부담을 조금이라도 털고 관객들에게 선물이 될 만한 모습을 보여드려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든다”고 책임감을 전했다.
20년이 넘게 거장들과 꾸준히 다작할 수 있는 본인만의 매력과 비결이 ‘평범함’에서 나오는 것 같다고 꼽기도 했다. 송강호는 “잘생기지 않아서, 평범한 이웃같은 느낌이 비결이라면 비결이지 않을까”라며 “그래서 그런 기회들이 의도치 않게 많이 찾아와준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겸손을 드러냈다. 다만 “‘반칙왕’ 때 제 모습만큼은 ‘달콤한 인생’ 때의 이병헌 씨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다”는 너스레를 덧붙여 폭소를 자아냈다.
한편 ‘거미집’은 지난 27일 개봉해 전국 극장에서 절찬 상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