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N 포커스]KBO는 '말'의 두려움을 모르는가

정철우 기자I 2007.11.22 11:11:29

 
 
 
 
 
 
 
 
 
 
 
 
 
 
 
 
 
 
[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한국야구위원회(KBO)가 21일 STX와 현대 유니콘스 매각협상을 종료하겠다고 선언한 뒤 야구판은 벌집 쑤셔놓은 듯 뒤숭숭하다. 이대로라면 8개구단 체제가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팽배하다.

KBO는 "대안이 있다"며 진화에 나서고 있지만 불길은 쉽게 잡히지 않고 있다. 농협에 이어 두번째 매각 협상마저 무산되며 책임론까지 대두되고 있는 상황이다. KBO 입장에선 외부에서 문제를 찾고 싶을 터. 그러나 KBO는 절대 파국의 파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유니콘스 인수 대상자로 STX가 세상에 알려진 과정부터 따져보자. 신상우 KBO 총재는 지난 9월말 기자 간담회를 자청했다. 400만 관중 돌파 성과를 알리고픈 마음에서 준비된 자리였다.

신 총재는 이 자리에서 "유니콘스 매각은 11월 중 이뤄질 것"이라고 공언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음날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 "이르면 10월 중에도 이뤄질 수 있다. 지금 한참 뻗어나가는 기업"이라고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신 총재의 발언이 나온 뒤 곧바로 대상 기업이 어디인지에 관심이 모아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STX라는 기업명이 거론됐다.

신 총재의 말에서 거의 힌트가 나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재계 순위는 만천하에 공개 돼 있다. 이 중 그동안 인수의사가 없음을 밝혀 온 기업들을 빼내고 뻗어나가는 기업만 찾아도 해답은 금세 나왔다.

또 있다. 야구인들의 입에서도 'STX'라는 이름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신 총재가 KBO 입성한 뒤 KBO 관련 명함을 갖게 된 인사들이 발원지였다.

'STX 회장의 출신 고교가 야구 명문 모 상고이며 그 학교출신 스타 플레이어와 절친한 사이'라는 업그레이드 버전까지 금세 퍼졌다.

KBO는 STX가 표면 위로 드러나자 당혹감과 불쾌감을 동시에 표시했다. 그러나 책임의 상당 부분은 KBO 내부에 있었다.

'말'의 두려움을 잊은 듯한 행동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얼마 전 하일성 KBO 사무총장은 대표팀 오키나와 전지훈련을 격려차 방문한 자리에서 롯데 신임 감독 임명 작업에 대해 많은 말을 했다.

"롯데가 외국인 감독을 영입하려 하고 있으며 일본 프로야구 지바 롯데가 깊숙히 간여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분명 월권 행위다. 프로야구단의 조합을 이끄는 고위 간부로서 한 구단의 기밀 사항을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었다.

하 총장은 한 술 더 떴다. "외국인 감독을 앉히는 문제는 롯데 자이언츠와 지바 롯데 구단주 대행 사이의 파워게임 결과"라는 말 까지 했다.

하 총장은 사무총장 취임 후 팬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 "현재 상황에서 기업이 프로야구단을 운영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있는 일이다. 프로야구단을 운영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야구팬들이 더욱 성원을 보내줘야 한다."

그러나 정작 하 총장은 어땠는지 묻고 싶다. 하 총장의 말의 진위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실제 그런 움직임이 있다해도 프로야구 기구를 이끄는 사람이 해선 안될 말이었다.

하 총장의 말대로 프로야구단을 운영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긍정적 효과도 많지만 하나의 산업으로서 자리매김하기엔 갈 길이 멀다. 이런 상황에서 그룹 최고위층의 사적인 부분까지 외부에 알려진다면 과연 어떤 기분이 들까.

하 총장은 방송 해설위원 시절 풍부한 정보와 해박한 지식으로 기자들에게 좋은 취재원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젠 자리가 달라졌다.

'말'은 실로 무서운 힘을 갖는다. 특히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들의 말은 더욱 그렇다. 어쩐 일인지 KBO를 이끄는 분들은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아이는 장난으로 돌을 던지지만 개구리는 그 돌에 맞아 죽는다"는 격언을 왜 삼척동자까지 다 알고 있는지 되새겨볼 일이다.


▶ 관련기사 ◀
☞[김성근 장인 리더십] 8회말을 지나 더블헤더로
☞KBO 유니콘스 매각 협상 '두번 모두 KO패'
☞중계권은 日진출 노리는 선수들의 지원군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