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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제30회 부일영화상 시상식에서 ‘모가디슈’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강혜정 외유내강 대표는 이렇게 소감을 밝히며 눈물을 보였다.
강혜정 대표는 13일 이데일리와 전화 인터뷰에서 “무대에 올라가니 객석이 비어있고, 시상식이 비대면이고, 그 순간 코로나 시대에 영화를 개봉한 사실을 실감했다”며 “어려운 시기에 ‘모가디슈’가 잘 싸웠구나란 생각에 예상치 못한 감정이 차올랐다”고 당시 소회를 전했다.
강혜정 대표는 올여름에 ‘모가디슈’(감독 류승완) ‘인질’(감독 필감성) 두 편을 극장에 내걸며 마음고생을 적잖이 했다. 막바지 상영 중인 ‘모가디슈’와 ‘인질’은 최근 VOD 서비스를 시작했다. 코로나19 이전의 좋은 시절에도 수십억원 이상을 쏟아부은 영화 두 편을 같은 시기에 내놓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코로나19로 할리우드 대작들도 고전하는 중인데 제작비 250억원의 ‘모가디슈’와 80억원의 ‘인질’을 3주 간격으로 내놨다. 영화와 관객이 사라져버린 탓에 극장이 무너지면서 영화산업이 생존 위기에 직면했지만 어느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하던 시기였다. ‘모가디슈’ 등은 극장가의 구원투수로 떠올랐고, 관객을 끌 만한 기대작이 필요하다는 영화계의 공감대도 형성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모한 결단이었지만 그만큼 영화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강혜정 대표는 “영화가 개봉하면 제작사와 배급사가 시장을 분석한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스코어에 대한 시뮬레이팅을 하는데, 개봉 1주차부터 하나도 맞는 게 없었다”며 “회사 식구들이 다 반대했는데 내가 밀어붙인 터라 그때부터 잠도 안 왔다. 거리두기 4단계가 그렇게까지 길어질 줄은 생각도 못했다”고 그간의 고충을 토로했다.
‘모가디슈’와 ‘인질’은 수도권 지역의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시행 속에 개봉했고 두 편 모두 “웰메이드 상업영화”라는 찬사를 받으며 각각 360만, 163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두 영화 모두 손실은 면했지만 3개월 간 이어진 4단계 조치에 큰 타격을 입었다. ‘모가디슈’는 올해 최고 흥행 기록을 세웠으나, 코로나19만 아니었으면 천만영화 등극도 기대할 수 있었던 작품이다. 스코어는 아쉽지만 ‘모가디슈’와 ‘인질’이 개봉한 덕분에 시장을 받칠 수 있었고, 추석 영화의 개봉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는 데 이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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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외유내강은 올여름을 계기로 일반 관객에게까지 이름 넉 자를 각인시켰다.
사실 외유내강은 업계에서 영화를 잘 만들기로 일찍이 소문난 제작사고, 강혜정 대표는 여전히 남성 파워가 센 영화판에서 남녀 통틀어 손꼽히는 제작자다. 강혜정 대표는 마케터, 프로듀서를 거쳐 2005년 ‘외’부에서 일하는 ‘류’승완 감독과 ‘내’부에서 일하는 자신(‘강’혜정)의 성을 따서 외유내강을 설립했다. 이후 ‘베를린’ ‘베테랑’ ‘사바하’ ‘엑시트’ ‘시동’ 등 1년에 1~2편씩 완성도와 흥행성을 갖춘 작품을 내놓으며 업계와 관객들의 신뢰를 얻었다.
강혜정 대표는 ‘겉은 부드럽고 속은 단단하다’는 외유내강의 한자성어 뜻처럼,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소유자로 안목과 기획력, 감독 및 배우, 직원들을 관리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듣는다. 영화인들이 함께 작업하고 싶어하는 제작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원래 영화에 조금의 관심도 없었다는 강혜정 대표는 1990년대 초반에 독립영화 워크숍에 참여하며 영화와 인연을 맺었고, 그곳에서 만난 류승완 감독과 5년 열애 끝에 결혼해 부부가 함께 영화의 길을 걷고 있다. 그의 시동생은 익히 알려져 있듯 배우 류승범이다.
강혜정 대표는 “류승범과는 초·중학교 과외교사와 학생으로 만났는데 결과는 좋지 않았다”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한 사람, 한 팀으로 꿨던 영화의 꿈이 결혼을 하면서 한 가족이 꾸는 꿈이 됐다”고 영화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그러나 코로나19가 바꿔놓은 세상에서 영화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크다. 영화가 극장에서 고전하는 사이 OTT 콘텐츠는 그야말로 전 세계를 휘젓고 있다. 강혜정 대표는 “더 좋은 시절이 올 거라는 기대를 하고 영화를 만들지만 좋은 시절이 오지 않으면 영화를 안 만들 것인가, 관객이 얼마나 더 좋아하는가가 아니라 어떤 플랫폼이 우리 콘텐츠의 가치를 얼마나 더 많이 쳐줄 건가를 따지면서 영화를 만든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며 “영화가 콘텐츠로 소비되는 시대에도 작품으로 남기기 위해서 제작자로서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 큰 물음표를 가지고 있다”고 고민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