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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7회말. 이제 그가 나설 차례다. SK 좌완 스페셜리스트 가득염(38). 그가 처음 SK 유니폼을 입을때만 해도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다. 마흔을 눈 앞에 둔 한물 간 투수정도로만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득염은 모두의 생각을 보기 좋게 날려버렸다. 시즌 내내 SK 불펜의 왼쪽 날개를 튼실히 지탱하며 팀 우승에 큰 힘을 보탰다. 특히 한국 시리즈와 아시아 시리즈서 20명의 타자를 맞아 단 1개의 안타만 내주는 빼어난 투구로 빛나는 SK의 가을을 이끌었다.
지난 6월말. 그는 잠시 1군 엔트리서 빠진 적이 있다. 매 경기가 마지막일 수도 있는 노장 투수에겐 두려운 시간이었을 터. 그러나 가득염은 그때도 웃고 있었다. 오히려 “요즘 행복하다”고 했다. “혹 더 이상 야구를 하지 못한다해도 얻은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는 “김성근 감독과 만남은 내게 큰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처음엔 감독님께 야구 배우고 싶어서 SK를 택했다. 그러나 지난 1년간 그보다 더 큰 것을 얻었다. 야구선수로 보다는 한 인간으로 살 날이 많이 남아 있다. 그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웠다”고 털어놓았다.
가득염은 그러면서 자신의 다이어리를 보여줬다. 지난해 11월 제주 캠프부터 김 감독이 미팅 시간때마다 한 얘기를 적어내려간 수첩이다. 그는 틈이 날때마다 이 수첩을 꺼내보며 마음을 다잡았고 내일에 대한 희망을 그려갔다.
SK의 가을잔치가 성공으로 끝난 뒤 가득염의 수첩 속에 담겨 있을 얘기들이 궁금해졌다. 김 감독의 어떤 말들이 야구고 세상이고 겪어볼 만큼 겪어본 노병의 마음에 다시 새로운 싹을 틔우게 한 것일까. 가득염의 동의를 얻어 살짝 그 안을 들여다봤다.
11월1일 제주 캠프 시작되는 날
뜬금없이 설문지가 돌려졌다. 야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가을 훈련의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등의 질문이 있었다. 지금껏 야구를 하면서 처음 해본 경험이었다. 내게 야구는 무엇일까….
11월 8일 제주 캠프
“생각의 차이에 따라 세상이 달라보인다. 자기 한계를 규정짓지 말아라. 한계를 그으면 거기까지 밖에 발전하지 못한다. 누가 뭐라하던 신경쓰지 말고 높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라. 항상 벼랑 끝에 서 있다고 생각하고 하면 안될 일이 없다.”
내가 정말 잘 할 수 있을까 의심스러울 때 마다 다시 한번 이 말을 찾아내 읽어본다. 난 실제로 벼랑 끝에 서 있었다. 거기가 끝이 아니라 믿으며 땀을 흘렸고 나는 지금도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11월26일 낭고 캠프
감독님이 (윤)길현이를 불러 칠판에 무언가를 적게 했다. 감독님도 책에서 본 얘기라고 하셨다. 길현이가 적은걸 보고나니 가슴이 뻐근해지는 느낌이었다.
“마음이 변하면 태도가 변하고 태도가 변하면 행동이 변한다. 행동이 변하면 습관이 변하고 습관이 변하면 인격이 변한다. 바뀐 인격은 운명을 바꾸고 운명이 바뀌면 인생이 달라진다.”
12월6일 낭고 캠프
“소극적으로 생각하면 발전할 수 없다. 시행착오를 겪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떨어지면 언제든 올라가면 된다. 떨어졌다고 좌절거나 잘 할수 있을까 의문을 갖지 말고 왜 떨어졌는지부터 생각하라. 불가능은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다. 안되면 원점으로 돌아가 처음부터,‘왜’부터 다시 시작하면 성공할 수 있다.
12월7일 낭고 캠프
“재능이나 지식이 없어도 내가 가진 걸 잘 활용하면 성공할 수 있다. 실패가 많을수록 강하다. 고민이 있을때 포기하면 거기서 끝이다. 고민을 이겨내야 한다. 집념을 가지고 할 수 있다고 믿어라.”
12월10일 낭고 캠프
“긴 인생에서 어떻게 피하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지나가야 하는 길이 있다. 그럴때는 아무 말 없이 그냥 걸어가라. 잔소리나 나약한 말을 뱉으면 안된다. 묵묵히 그냥 가라. 눈물을 보이면 안된다. 그 길을 걸어갈 때 인간으로서 생명의 뿌리가 깊어진다.”
1월20일 고지 캠프
“승부는 눈물겨운 것이다. 나 하나에 우리 가정은 울고 웃는다. 나 하나의 움직임에 가족이 웃고 운다. 내가 던지는 공 하나에 내 가족의 생계가 달려있다는 절박함이 있다면 쉽게 던질 수 있겠는가. 고통을 이겨내야 행복해질 수 있다.”
1월24일 고지 캠프
“‘보통 선수’는 안된다는 생각을 먼저 하기 때문에 안되는 것이다. ‘더 나은 선수’는 안되는게 있으면 그걸 고치겠다는 열정을 갖고 있다. 고치겠다고 마음 먹으면 달라질 수 있다.”
내 보직은 좌타자만 상대하는 원 포인트 릴리프. 그러나 그 틀에 그냥 나를 가둬놓은 것은 아닐까. 내게 더 높은 목표는 무엇일까.
1월31일 고지캠프
“인생은 내 것이지 남의 것이 아니다. 오늘 일은 오늘 끝내라. 내일로 미뤄두면 진다. 하루를 살더라도 목표 의식을 갖고 부딪혀라. 뒤로 넘기지 말고 그날 고민은 그날 해결하라.”
2월5일 오키나와 캠프
“큰 나무엔 가시가 없고 가지도 적다. 그러나 작은 나무일수록 가시가 나고 가지도 많아진다. 자신감을 갖고 크게 가는 사람은 주변을 둘러볼 필요가 없다. 여기 저기 신경을 많이 쓰고 휘둘리는 사람은 자잘하게 자랄 수 밖에 없다.”
2월10일 오키나와 캠프
“기회는 언젠가 분명히 온다. 내 것을 확실히 만들어놓고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처음 가졌던 목표를 마무리 지어 놓지 않으면 기회가 왔을때 허둥댈 수 밖에 없다. 연습량이 많다고 만족하지 말라. 양이 문제가 아니라 그 속에서 내 것을 찾고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포기는 한번 하고 나면 버릇이 된다. 할 수 있을지 걱정하지 말고 된다고 마음먹고 부딪혀라.”
가득염은 수첩을 덮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때 후배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까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겐 너무도 절실하게 다가왔다. 야구를 끝내야할지도 모르는 벼랑 끝에 서 봤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감독님이 어렵다. 살갑게 얘기를 해 본 기억은 없다. 그저 멀리서 지켜볼 뿐이다. 하지만 늘 기대를 갖게 된다. 또 무언가 좋은 길을 보여주실 것 같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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