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닷컴 제공] 두 ‘미소 천사’가 만났다. 187㎏짜리 바벨을 드는 ‘지구에서 가장 힘센 여자’ 장미란(26·고양시청)과 400g이 채 안되는 골프클럽으로 2009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를 평정한 신지애(21·미래에셋). 종목도 체격도 딴판이지만 둘은 각자 분야의 세계 정상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특히 넉넉하고 잔잔한 미소 속에 간간이 환하게 터지는 함박웃음은 마치 친자매처럼 닮았다. 서로에게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었지만 정작 만남까지는 만 1년이 걸렸다. 세계선수권 4연패를 달성한 장미란과 LPGA 상금왕과 신인왕을 휩쓸고 금의환향한 신지애가 지난달 28일 저녁 서울 논현동의 한 갈빗집에서 반가운 만남을 가졌다.
“어머,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아담하네. 너무 귀엽다.”(장) “너무 반가워요. TV에서 많이 봬서 그런지 편안한 느낌이에요.”(신)
5분 먼저 도착한 후배 신지애가 장미란에게 책(불의 전차, 그리고 그 후)과 피아노곡 CD를 건네자, 장미란은 제주도에서 샀다며 인형을 선물했다. 약속이나 한 듯 청바지에 검은색 상의를 차려입은 둘은 서로에게 줄 선물까지 준비해두고 있었다.
부모님 권유로 운동 시작 비슷
장미란이 “지난해 말 TV 프로에서 지애가 날 만나고 싶어 한다는 얘길 하는 걸 보고 너무 놀랍고 기뻤는데 마땅한 연결고리가 없어 만나지 못했다”고 말하자 신지애는 “다른 종목이지만 뭔가 통하는 데가 있고 언니로부터 배울 점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대답했다. “인연이 되려면 언젠가 반드시 만나게 되는 법”이라는 노래 가사 같은 답변도 함께였다.
이어 “지애 미니홈피에 들어가 쪽지라도 남길까 했다”는 장미란의 얘기에 신지애는 “언니 같은 사람이 내 미니홈피를 방문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에 아마 그랬더라면 누가 장난을 쳤으려니 하고 그냥 넘겼을 것”이라고 맞받았다. “이제 일촌 신청하면 받아줄 거죠?”(신)라는 물음에 “음… 오늘 어떻게 하는지 봐서…”(장)라는 재치 있는 답변을 내놓으며 둘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서로의 팬이라고 자처하는 두 사람. 언젠가 신지애가 큰 대회에서 2위를 하고도 신문과 방송에 아주 작게 나온 것에 대해 장미란은 “2등도 대단한 성적인데 그렇게 취급되는 걸 보고 오히려 내가 섭섭했다”며 마치 자신의 일처럼 안타까워했다. “언니가 베이징올림픽에서 메달 따는 걸 보고 팬이 됐다”는 신지애도 “언론은 꼭 1등을 해야만 크게 다뤄준다”며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운동선수로서의 어려움과 극복 방안에 대해 선배가 조언을 내놓자 후배는 귀를 기울였다. 장미란은 “처음에는 내가 잘해서 좋은 성적이 나오는 줄 알았는데 일정 수준에 이르자 한계에 부딪혔다”면서 “스스로 답을 찾아 해결해야 하는데 신앙이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신지애도 “언니 얘기처럼 내가 잘해서 지금 위치에 온 것이 아닌 것 같다”고 맞장구를 쳤다.
두 사람 모두 태극마크를 달았지만 태릉과 제주 등으로 훈련장이 달라 마주칠 기회는 없었다. 신지애가 가장 먼저 떠올린 국가대표의 추억은 선배들로부터 받은 ‘얼차려’였다. 고교 시절 국가대표로 뽑혀 합숙훈련에 들어가 운동장 50바퀴 달리기와 열중쉬어 자세로 머리를 바닥에 처박는 이른바 ‘원산폭격’ 등 험한 얼차려를 받았다고 하자 장미란은 깜짝 놀라며 “어머, 우린 그런 거 없는데…”라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둘의 관심사는 각자의 운동 분야를 넘어 일상으로도 이어졌다. 장미란은 “내가 덩치가 커서 겁이 없을 것 같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겁이 많아 놀이기구도 못 탄다”며 “운동선수는 겁이 없을 거라는 편견은 버려야 한다”고 웃었다. 이에 대해 신지애도 “맞아요, 우린 여자란 말예요. 저도 놀이기구 못타요”라고 화답했다. 2년 전 친구와 함께 간 놀이공원에서 초등학생들도 ‘싱겁다’던 롤러코스터를 탔다가 공포에 질려 혼쭐이 난 경험이 있다고 했다.
“나와의 싸움 끝낸 뒤 또 만나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두 사람처럼 역도와 골프에도 공통점이 있을까? 장미란은 “역도는 단순히 힘만으로 하는 운동이 아니라 유연성과 기술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선수 스스로 어떤 원리에 의해 무게를 들어올리는지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신지애는 “골프는 흔히 정신력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체력의 중요성 또한 크다”면서 “정지된 상태에서 볼을 타격해 운동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스윙에서 체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역도선수는 힘보다 기술, 골프선수는 정신력보다 힘의 중요성을 지적한 것이다. 서로의 종목에 대한 배려와 이해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골프를 시작한 신지애는 “정말 아무것도 모른 채 시작했다”면서 “박세리 선배가 우승하는 것도 봤지만 사실은 뭐가 뭔지 잘 몰랐다”고 말했다. 아빠가 골프를 하라고 했을 때 그저 “네” 하며 순종한 것이 지금의 신지애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운동 안 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아찔하다.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는 장미란은 “본인이 잘할 수 있는 걸 찾아내기 어려운데 부모님이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주셨다”며 감사를 표했다. ‘긍정의 힘’을 보여주고 있는 두 사람 모두 소문난 효녀다. 신지애는 “아빠를 철석같이 믿고 따랐기 때문에 아빠 말씀에 대해서는 한 치의 의심도 없다”고 말했다.
새해에는 가을에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와 12월 아시안게임에 출전할 계획인 장미란은 “요행이 아니라 땀 흘린 만큼 성과가 났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펼쳐보였다. 신지애도 “몇 승을 하겠다는 목표를 정하기보다는 스스로 정한 수준에 올라서고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앞으로 언젠가 운동을 그만둔 뒤에는 못 먹고, 못 입는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겠다는 장미란. 의기투합한 신지애도 선뜻 힘을 합치겠다며 거들었다.
몇 년간 알고 지내온 것처럼 금세 친해진 두 사람의 얘기는 밤 깊어가는 줄 모르고 3시간 가까이 이어져 오후 11시 무렵에야 끝이 났다. “오늘은 갈비를 먹었으니 다음에는 ‘불도장’을 사겠다”는 장미란에게 신지애는 “언니, 꼭 사줘야 한다”며 미소로 화답했다.
휴대전화 번호와 e메일 주소 등을 주고받았지만 헤어지는 게 못내 아쉬웠는지 둘은 각자 차에 오르기 전 서로를 꼭 껴안은 뒤에야 발길을 돌렸다. 두 미소 천사의 얼굴에는 서로에게 힘이 되는 든든한 버팀목을 만났다는 환한 미소가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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