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슬이 열고 린다G로 꽃피운 '부캐의 세계'

김보영 기자I 2020.06.17 05:50:43

래퍼 '마미손'이 시초→유산슬로 '부캐 신드롬' 열어
부캐 혼성그룹 '싹3'…김신영·박나래도 부캐 가세
"시청자와 출연자의 거대한 역할놀이…시너지 효과"

[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부캐’(부캐릭터)란 키워드가 최근 방송가, 특히 예능계를 강타할 핵심 트렌드로 떠올랐다. MBC 예능 ‘놀면 뭐하니?’가 개그맨 유재석을 내세워 다양한 ‘부캐’를 만들어내고 이를 콘텐츠로 적극 활용한 것이 폭발적인 반응을 얻자 하나의 현상이 됐다.

(왼쪽부터)MBC 예능 ‘놀면 뭐하니?’가 탄생시킨 트로트가수 유산슬(유재석), 개그우먼 김신영의 부캐 ‘둘째이모 김다비’. (사진=MBC, 미디어랩시소)
‘부캐’란 원래 사용하던 캐릭터가 아닌 또 다른 캐릭터를 뜻하는 말로 온라인 게임에서 유래한 용어다. 그러나 개그맨, 뮤지션들이 다른 이름과 인격을 내세워 방송에 출연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예능에서 유행어처럼 번지고 있다.

그 시초에 ‘마미손’이 있었다. 마미손은 2018년 Mnet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777’에 핑크빛 복면을 쓰고 처음 등장한 래퍼다. 목소리와 제스처, 어설프게 뚫린 복면의 구멍 사이 드러난 이목구비를 통해 힙합 팬들은 그의 정체가 매드클라운일 것이라고 지목했다. 마미손은 이를 강력부인했고 현재까지도 얼굴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예능 전체에 ‘부캐의 세계’를 구축한 건 유재석의 공이 크다. 유재석은 ‘놀면 뭐하니?’에 출연하며 연출을 맡은 김태호 PD가 부여해준 부캐들을 각양각색으로 소화해내고 있다. 먼저 드럼에 도전하는 ‘유고스타’를 시작으로 트롯 신인가수 ‘유산슬’로 데뷔해 앨범을 내고 콘서트까지 치렀다. 이어 라면 끓이는 요리사 ‘라섹’과 하프 신동 ‘유르페우스’, 라디오 DJ ‘유DJ뽕디스파뤼’, 치킨을 튀기는 ‘닭터유’까지 선보였다.

특히 트롯가수 ‘유산슬’은 콘서트 투어는 물론 타사 프로그램, 연말 연예 시상식 무대까지 오를 정도로 신드롬을 일으켰다. 특히 철저히 본캐(본 캐릭터)인 유재석과 거리를 두며 유산슬 정체성에 몰입하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웃음을 유발했다.

MBC ‘놀면 뭐하니?’가 출범시킨 혼성그룹 싹3(SSAK3). (왼쪽부터)유재석(유두래곤), 이효리(린다G), 비(비룡). (사진=‘놀면 뭐하니’ 방송화면)
최근 ‘놀면 뭐하니’는 유재석에 가수 이효리·비(본명 정지훈)를 내세워 부캐로만 이루어진 여름 댄스 혼성 그룹 ‘싹3’(SSAK3)을 결성했다. 유튜브 라이브 방송으로 시청자들의 의견을 모아 그룹명을 정한 것은 물론 각 멤버의 활동명까지 시청자들이 정해줬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효리는 ‘지린다’에서 유래한 ‘린다G’란 이름으로 데뷔 이래 최초로 활동명을 갖게 됐다. 시청자들이 정해준 이름과 함께 미국에서 미용실을 운영한다는 설정까지 더해 ‘부캐’를 구축했다. 비 역시 ‘비룡’, 유재석은 ‘유두래곤’이란 활동명을 부여받으면서 이 그룹이 어떤 또 다른 ‘부캐 신드롬’을 만들어나갈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다른 연예인들도 잇달아 부캐 도전에 나섰다. 최근 개그우먼 김신영이 탄생시킨 부캐 ‘둘째이모 김다비’는 유재석의 부캐들 못지 않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개그우먼 박나래 역시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에서 미국식 홈파티에 어울리는 부캐 ‘조지나’를 소개해 웃음을 안겼다.

김헌식 평론가는 “시청자와 출연자 간 일종의 거대한 ‘역할 놀이’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라며 “신선함을 추구하는 시청자들의 욕구가 재미를 선사해야 한다는 연예인들의 책임감, 새로운 캐릭터에 대한 갈망과 합쳐 시너지를 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연예인 입장에서는 원래 갖고 있던 캐릭터와 이미지상 드러낼 수 없던 새로운 정체성과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며 “그 사람이 연기를 하는 걸 알면서도 시청자들이 속아주는 과정, 모두가 그 사람인 걸 아는데 아닌 척 천연덕스럽게 시치미를 떼는 연예인들의 모습이 웃음 요소로도 작용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한 연예계 관계자는 “이미 정점을 찍은 인기 연예인들이기 때문에 ‘부캐’도 만들 수 있는 것”이라며 “다양한 ‘부캐’로 방송에 신선함을 가져다주는 것은 좋지만, 가뜩이나 인기 연예인들한테만 편중돼 있는 방송가 파이가 더 불균형해질 수 있다. 새로운 스타들이 등장할 기회의 공간이 더 줄어줄 수 있다는 의미”라고 우려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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