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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SPN 김삼우기자] 김동석의 아버지 김진복씨는 이청용의 아버지 이장근씨와 다소 다른 점이 있었다. 이씨는 아들이 일찍 프로에 뛰어 든 것에 대해 “걱정은 되지만 잘 간 것 같다.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으나 김씨는 “아직 잘했다, 못했다 판단할 수 없다”고 했다.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자는 모습 보면 기특하면서도 가슴아프다
김씨도 아들 김동석이 초등학교 졸업장 밖에 없다는 사실을 가슴 아파했다.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아직 우리나라는 학벌이 중요하지 않은가. 신정아 사건에서 보듯이 학력을 속여서라도 어떻게 해 보려 하지 않느냐. 사회에서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동석이는 아직 성공한 사례라고 볼 수도 없다. 이제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을 가지 않은 게 걱정이 된다. 선수 생활을 마치고 지도자를 하더라도 필요할 것 같은데. 학연, 지연은 축구계에서도 강하게 작용하지 않는가.“
그런데도 김동석을 중학교 과정을 마치지도 않고 프로에 보낸 이유는 무엇일까.
“원래는 고등학교에 진학 시킬 계획이었다. 하지만 조광래 감독(당시 안양 감독), 이영진 코치 등 당시 코칭스태프를 만나면서 상황이 변했다. 이들은 환경이 좋은 곳에서 어릴 때부터 운동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영어 등 필요한 공부도 채워 줄 수 있다고 했다. 갈등이 심했다. 학력을 포기해야 하고, 성공 여부조차 불투명한 게 아닌가. 중도에 탈락한다면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고민이 있었다. 고등학교 감독 등 많은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눈 끝에 결정했다.”
하지만 말리는 이들도 있었다. 차범근 수원 삼성 감독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김동석은 사단법인 차범근 축구 교실 출신이다.
“회장님(김 씨는 차 감독을 축구 교실 회장님으로 불렀다)은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프로에 가는 것을 바람직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공부를 하면서도 축구를 할 수 있다고 하면서 내가 너무 성급하다고 했다. 그때 회장님 말씀대로 고등학교를 갔으면 어땠을까, 더 잘 될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있다.”
김 씨는 이렇게 차 감독의 뜻을 마다하고 프로에 왔지만 차 감독에 대한, 차범근 축구교실에 대한 고마움이 많았다.
“그래서 회장님과 좋지 않은 상태로 프로에 왔다. 그러나 요즘도 동석이가 차범근 축구교실을 다니지 않았다면 기본기를 제대로 갖출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축구교실도 그렇지만 용강중(차범근 축구 교실 출신이 주로 진학한다)에서도 당장의 성적보다는 기본기 위주로 아이들을 지도했다. 또 축구교실, 용강중은 환경도 좋았다. 좋은 여건에서 운동할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용강중은 성적이 떨어지면 일정 수준에 오를 때까지 운동을 안 시킬 정도로 엄했다. 운동도 수업을 다 마치고 하도록 했고 수업에 들어가서는 졸지 말라고 당부하는 분위기였다. 축구팀을 욕 먹일 짓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합숙도 없었고, 용품을 대느라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축구교실이 지원받는 곳으로부터 용품이 나왔기 때문이다. 학부모들이 돈 때문에 고민할 일이 없었다. 무엇보다 처음부터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시킨다는 마음을 가질 것을 부탁하는 게 인상 깊었다. 즐겁게 운동하는 것을 강조했다. 지금 생각해도 이런 분위기는 너무 좋았다. 성적에 대한 부담도 적었지만 용강중은 전국소년체전에서 우승하는 등 성적도 좋았다. 선수들이 모두 기본기가 잘 갖춰진 덕분이었던 것 같다 ”
▲후회는 하지 않는다
김씨는 그렇다고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프로에서도 김동석 스스로 만족하면서, 나름대로 즐기며 운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때 우리의 판단이 나빴다고 생각지 않는다. 동석이는 초등학교 때 야구를 시켜보려 했는데 자기가 축구를 한다고 했다. 프로에서는 운동하는 조건도 좋고 동석이 나름대로 포부를 가지고 아직까지 즐겁게 축구를 하고 있다. 팀에서 코치들이 야단치면서 말릴 정도로 자기가 열심히 운동을 한다. 지금 나이면 고민했을 수도 있는 프로 진출에 대한 부담감도 떨쳐 버렸고, K리그에 얼굴도 비추면서 아직은 무난한 길을 걷고 있다. 집에 와서도 쉬지 않고 같이 조깅도 하면서 운동을 한다. 자기 스스로 알아서 한다..”
김씨는 특히 프로에 잘 왔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프로는 환경이 좋다. 동석이가 2004년 무릎을 다쳤다. 고등학교 2학년 되던 나이였다. 그때 관절경 수술을 두 차례 받으면서 2005년까지 고생했다. 프로에 있지 않고 고등학교에 있었더라면 지금처럼 회복할 수 있었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그리고 2006년 김성남 2군 감독이 동석이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어 줬다. 그때 김 감독은 조동현 청소년 대표팀 감독에게 2군 경기에 뛰는 동석이를 와서 보라고 할 정도로 힘을 실어줬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것 같다.”
▲ 착하고 대견한 아들
김씨는 막내인 김동석이 그저 대견스러운 듯 했다. 대학을 다니는 장남을 볼 때는 막둥이가 애틋하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보다 믿음직스럽다고 했다.
“체육대학을 다니는 큰 아들을 보면 동석이는 초등학교 졸업장 밖에 없다는 사실이 생각나 가슴 아프다. 큰 아들도 고등학교 때까지 축구를 했다. 신체조건은 동석이보다 좋다. 중학교때 수업시간에 들어와 잠자는 축구부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맞는 것을 보고 축구를 포기했다가 고등학교 때 다시 축구를 했다. 그러나 역시 운동과 공부를 함께 하는 게 힘들어 공부로 돌아섰다. 체대에 진학해 좋아하는 축구는 동아리 모임에서 하면서 열심히 공부를 하는 것을 보면 만족스럽다.
집에 와서 잠자는 동석이 얼굴을 보면 기특하다는 생각과 함께 걱정이 된다. 걱정은 학력 탓이다. 많이 바뀌었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여전히 우리나라는 명문대 출신들이 선호 받는다. 그들은 그들의 후배를 찾는다. 연세가 드신 분들은 더욱 그렇다.
부상에 시달릴 때 우리가 걱정할 것을 생각해서인지 ‘운동하다 안 되면 검정고시라도 봐서 공부할 수 있다. 나중에라도 공부를 하면 못할 게 뭐 있느냐’면서 오히려 가족들을 달래주려고 하더라. 요즘은 영어는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속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항상 각오가 되어 있다. 지금이라도 검정고시를 볼 수 있다는 말을 항상 한다.“
그러면서 김씨는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겠지만 아들을 보면 바늘방석에 앉은 것 같다고 했다. 특히 이청용의 아버지처럼 부상에 대한 걱정이 대단했다.
“항상 바늘 방석에 앉아 있는 것 같다. 부상당했을 때는 걱정이 말을 못할 정도다. 부상 탓에 운동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첫째가 몸이다. 학력에 대한 우려도 끊이지 않지만.”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폭발시켜줬으면
김씨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김동석이 가진 모든 것을 폭발시켜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다음에 좋은 길을 걸었다, 못됐다 판단하겠다고 했다.
“아직 동석이가 제일 잘한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다. 다만 자기가 가진 능력을 모두 보여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의 플레이를 하는 것이다.
동석이 경기는 몰래 가서 본다. 내가 가서 보는 것을 의식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도 동석이는 경기장에 왔다갔는지 다 알더라. 집에 오면 형과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한다. 좀더 과감해져라 등등. 동석이도 잘 받아들인다.
중도에 도태되는 선수들도 많다. 걱정도 된다. 하지만 지금은 과정에 있다고 본다. 이근호처럼 2군에 있다가 뒤늦게 꽃을 피우는 선수도 있다. 동석이도 지금 1군 경기에 조금 나선다고 자만하면 실패하기 십상이다. 이런 이야기도 해 준다.
축구 선수들의 꿈이 유럽 진출을 이루고 거기서 잘 풀리면 역시 좋은 길을 걸었다고 할 수 있을까. 후회는 하지 않지만 ‘일찍 프로에 진출하는 것이 좋다 나쁘다’는 판단은 나중에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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