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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K저축은행 럭비단 오영길(55) 감독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날 줄 몰랐다. 재일조선인 고등학교인 오사카조선고급학교(오사카조고) 얘기가 나오자 예전 기억을 떠올리며 환하게 웃었다.
오 감독은 13년 전 일본 오사카부 히가시오사카에 위치한 오사카조고 체육 교사이자 럭비부 감독이었다. 당시 오사카조고는 일본 내에서도 가장 치열하다는 오사카 지역예선을 뚫고 ‘럭비의 고시엔’이라 불리는 고교전국대회 ‘하나조노’에 진출했다. 연일 투혼을 발휘해 4강까지 오르는 쾌거를 이뤘다.
오사카조고의 돌풍은 일본 전역에 큰 화제를 모았다. 이전까지 오사카조고가 하나조노 같은 권위 있는 전국고교대회에 참가한다는 자체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오사카조고는 일본이 인정하는 교육제도 밖에 있는 학교였기 때문이다.
일본은 2010년 모든 고교 교육에 무상화 정책을 도입했다. 하지만 조선학교인 오사카조고는 이에 해당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가 정한 교육과정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오사카조고는 일본어 대신 한국어로 수업했고 교과서도 따로 제작해 사용했다. 조선인의 뿌리를 지키겠다는 의지 때문이었다.
자연스레 교사와 학생들은 혐한 단체의 단골표적이 됐다. 위험한 상황이 수없이 반복됐다. 지금도 무상교육 지원을 받지 못하는 오사카조고 학생들은 매달 수십만원에 이르는 수업료를 낸다. 졸업생들은 일본 사회에서 고교 학력을 인정받지 못한다. 고교 학력을 인정받으려면 한국의 검정고시 같은 시험을 따로 치러야 한다.
오사카조고에게 럭비는 재일교포로서 자존심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였다. 처음에는 정식 고교가 아니라는 이유로 대회에 나가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당시 재일교포들과 의식 있는 일본인들이 서명 운동을 펼친 덕분에 전국대회 무대를 밟을 수 있게 됐다. 특히 일본 럭비계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당시 오 감독을 중심으로 한 럭비부 선수들은 투혼을 불살랐다. 그 결과 2007년부터 8년간 7차례나 하나조노에 진출할 수 있었다. 오 감독과 선수들이 보여준 투혼과 열정, 눈물은 다큐멘터리 영화 ‘60만번의 트라이’를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오 감독은 “평소 선수들에게 ‘재일교포의 사명을 짊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곤 했다”며 “재일교포 학교 럭비부로서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 가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선수들에게 동기 부여를 했다”고 밝혔다. 이어 “일본에서 차별은 분명히 존재했다”면서 “우리의 목표는 ‘하나조노 제패’였지만 진짜 목적은 일본사회가 재일교포를 바라보는 인식을 바꾸는 것이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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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하나조노 4강 진출을 ‘기적’이라고 표현했지만 오 감독은 선수들에게 ‘당연한 결과’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선수들은 3위라는 결과를 가질 자격이 있었다”며 “이러한 목표와 목적을 공감하고 나를 믿고 따라준 선수들 덕분에 오사카 대표로 당당하게 하나조노에 나설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오 감독의 바람대로 오사카조고는 일본 사회를 바꿨다. 공식전에 출전할 수 있는 재일교포 학교도 점차 늘어났다. 지금은 모든 재일교포 학교가 공식전 출전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오 감독은 이제 본격적으로 한국 럭비 발전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올해 초 OK금융그룹 읏맨 럭비단 감독을 맡아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그는 “선수들이 럭비 정신을 토대로 사회 자립과 행복한 삶 개척에 성공할 수 있도록 지도자뿐 아니라, 인생의 조언자로서도 역할을 맡아달라는 최윤 회장님의 요청을 받고 팀을 맡기로 결심했다”며 “럭비를 통해 인품과 리더십을 함양하고 사회에서 럭비정신을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고 싶다”고 했다.
오 감독은 인터뷰 말미에 이런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럭비 스포츠의 저변이 확대될 수 있도록 기여하고 싶다는 그는 “더 많은 사람이 한국 럭비에 관심을 갖고 응원한다면 한국 럭비 발전은 물론 재일교포 럭비선수들에 대한 관심도 커질 것이기 때문”이라면서 “재일교포 럭비선수들도 한국 국가대표팀에 어우러져 국위 선양을 위해 경기에 출전하는 날도 한층 가까워질 것이라 생각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