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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투어에서 활약하는 많은 프로 선수가 퍼트가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은 그립을 바꾸는 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선수들이 집게 그립을 애용한다. 새가 집게발로 먹이를 꽉 붙잡는 모양을 하고 있다는 뜻에서 ‘집게 그립’으로 불린다. 영어로는 ‘클로 그립’이라고 하는데, 새의 발톱이나 게 등 갑각류의 집게발이라는 뜻의 클로(Claw)에서 그립 명칭을 따왔다. PGA 투어 통산 4승의 닉 테일러(캐나다)도 집게 그립을 잡고 대기만성한 선수다.
2014년 샌더스 팜스 챔피언십에서 PGA 투어 첫 우승을 차지한 테일러는 2020년 AT&T 페블비치 프로암에서 우승하기까지 6년에 가까운 무명 기간을 견뎌야 했다. 이후에도 2년 넘게 우승이 나오지 않자, 테일러는 개선점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가장 보완해야 할 점이 퍼트라고 분석한 그는 쇼트게임 코치 개러스 라플르브스키에게 도움을 청했다. 라플르브스키 코치는 한국 여자골프 간판스타인 고진영이 세계랭킹 1위를 달릴 때 함께 했던 쇼트게임 코치로도 유명하다.
라플르브스키 코치가 가장 먼저 변화를 준 건 테일러의 스탠더드한 그립을 집게 그립으로 바꾼 것이다. 일반적인 그립을 잡았을 때는 손목이 눌리면서 퍼터 헤드의 토(toe)가 들려, 스트로크 시 공이 왼쪽으로 당겨지는 현상이 나올 수 있다. 연필을 쥐듯 오른손 엄지와 검지, 중지로 살포시 그립을 잡는 집게 그립은 손과 팔의 각이 세워져 손목 움직임이 줄어든다. 덕분에 공이 일자로 굴러가는 장점이 있다. 방향성이 좋아진다는 뜻이다. 집게 그립으로 바꾼 뒤 테일러는 지난해 6월 RBC 캐나다오픈과 올해 2월 WM 피닉스오픈에서 정상에 오르는 등 최근 8개월 새 2승을 거두며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특히 테일러는 지난 12일 우승을 차지한 WM 피닉스오픈에서 퍼트로 줄인 타수를 의미하는 SG퍼트지수 8.940을 기록, 전체 출전 선수 중 1위를 차지했다. 그린 위에서 거의 9타를 번 셈이다. 테일러는 올 시즌 SG 퍼트 지수 24위에 올라와 있다. 2020년에는 114위에 그쳤었다. 그야말로 평범한 퍼터에서 특출난 퍼터로 변신한 것이다.
테일러의 또 다른 비결은 퍼트 연습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다. 경기 전에 연습 그린에서 15분씩 공을 굴리고, 대회가 없는 날에는 하루에 45분~1시간 이상을 꼭 퍼트 연습에 매달린다.
정신적인 측면 역시 크게 성장했다. 일부 골퍼들은 압박감이 있는 상황에서 무너지기 마련인데, 테일러는 압박감 속에서도 성과를 내는 능력이 뛰어나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6월 우승한 RBC 캐나다오픈이다. 캐나다 홈팬들의 열띤 응원을 받은 테일러는 토미 플리트우드와 4차 연장까지 벌인 끝에 22m짜리 우승 이글 퍼트를 만들어냈다. 이 이글 퍼트로 우승을 확정한 그는 내셔널 타이틀 대회인 캐나다오픈 69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우승한 캐나다인이 됐다.
테일러는 이같은 정신력이 경험과 긍정적인 생각에 기반한다고 밝혔다. 그는 “주니어 시절부터 압박감을 받는 데 익숙했다. 압박감 속에서도 내가 원하는 샷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오랫동안 내재해 있었다”면서 “또 나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는다. 밑바탕에 모든 샷을 성공한다는 자신감이 있다. 멘털 공부와 호흡 연습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를 지도했던 코치 맷 서먼드는 “어려운 조건과 고압적인 상황에서 자기 능력을 최고치로 끌어올리는 선수는 처음 지도해봤다”며 “테일러는 가장 중요한 순간에 최고의 샷을 칠 수 있는 선수”라고 호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