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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0년 지어진 것으로 기록된 카누스티 골프링크스는 디오픈이 열리는 스코틀랜드 링크스 코스 중 하나다. 1999년 장 방 드 벨드(프랑스)가 마지막 홀에서 트리플 보기를 하며 우승을 놓쳤던 장소로 더 유명하다.
영국인 로버트 모일은 카누스티에서 처음 골프를 친 골퍼로 기록돼 있다. 초창기엔 10개 홀로 운영되다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의 코스관리자이자 골퍼였던 올드 톰 모리스가 1867년 18홀로 확장했다. 1926년엔 제임스 브레이드가 코스를 리뉴얼하면서 지금의 챔피언십 코스가 됐다.
카누스티라는 이름은 바위를 뜻하는 ‘Car’와 만(bay)을 뜻하는 ‘Noust’의 합성어다. 또 다른 속설에선 노르웨이 신들이 자신을 지키는 전사를 잃는 것에 분노해 이웃에 저주를 퍼붓기 위해 수천 마리의 까마귀를 풀었다. 까마귀는 바다건너 스코틀랜드에 모여들었고 사람들은 이 동네를 ‘Craws Nestie’로 불렀고 나중에 카누스티가 됐다고 한다.
카누스티 골프링크스는 약 40분 거리에 있는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가 ‘골프의 발상지’로 알려졌다면, 카누스티는 골프를 대중화한 곳이라고 주장한다.
20세기 초 카누스티에선 약 300명의 골퍼를 미국과 호주 등으로 파견했고, 그들에 의해 골프가 전 세계로 전파됐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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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디오픈을 처음 개최했고 토미 아머가 우승했다. 이어 헨리 코튼(1937년), 벤 호건(1953년), 게리 플레이어(1968년), 톰 왓슨(1975년), 폴 로리(1999년), 파드리그 해링턴(2007년), 프란체스코 몰리나리(2018년)이 한 번씩 우승했다.
카누스티는 까다로운 코스에 변화무쌍한 날씨까지 심술 궂어 미국에서 건너온 선수들은 이 코스는 ‘커-내스티’(Nasty·끔찍한, 심각한)라고 부르기도 한다.
23년 전 카누스티에선 디오픈 역사에 길이 남은 참사가 일어났다. 3타 차 선두로 디오픈 우승을 눈앞에 둔 장 방 드 벨드(Jean Van de Velde·프랑스)는 18번홀에서 티샷을 날렸다. 499야드의 파4 홀로 카누스티에서 가장 까다로운 홀이지만, 누구도 방 드 벨드의 우승을 의심하지 않았다.
티샷한 공은 17번홀 쪽으로 날아가 러프에 떨어졌다. 무리하지 않고 3온을 시도해 보기나 더블보기만 해도 우승할 수 있었기에 이때까지도 대참사가 일어날 것이라는 상상은 하지 못했다. 그러나 방 드 벨드는 뜻밖에도 2온을 시도했고 두 번째 친 공은 심하게 밀리면서 그린 주변 갤러리 스탠드 아래 깊은 러프에 떨어졌다.
최악의 상황은 그다음부터 이어졌다. 세 번째 샷으로 그린 앞 실개천을 넘기려다 그만 공을 물에 빠뜨렸다. 1벌타를 받고 다섯 번째 친 공은 벙커로 들어갔고, 결국 6타 만에 공을 그린에 올린 방 드 벨드는 트리플보기를 적어내고 말았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폴 로리는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하고 2위로 경기를 끝낸 뒤 짐을 싸 집으로 돌아가던 중 소식을 듣고 차를 돌려 다시 골프장으로 왔다. 그리고 방 드 벨드, 저스틴 레너드(미국)와 연장을 치러 극적으로 디오픈 우승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15~18번홀에서 치러진 4개홀 연장전에서 로리는 17번과 18번홀에서 버디를 잡아 방 드 벨드와 레너드를 꺾었다. 3타 차 선두를 지키지 못한 방 드 벨드에겐 결코 잊을 수 없는 악몽이, 폴 로리에겐 메이저 우승이라는 기적이 찾아왔다.
8년 뒤인 2007년에도 18번홀에선 이변이 일어났다. 박빙의 선두를 달리던 파드리그 해링턴(아일랜드)는 18번홀에서 티샷이 워터해저드로 빠졌다. 1벌타를 받고 친 세 번째 샷도 그린 앞 개울에 들어갔다. 해링턴은 고개를 떨궜고, 관중석에선 탄식이 나왔다. 결국 해링턴은 이 홀에서 더블보기를 했다. 8년 전 장 방 드 벨드처럼 또 한명의 희생자로 기억될 가능성이 컸다.
해링턴이 더블보기를 하면서 세르히로 가르시아(스페인)이 1타 차 선두가 됐다. 18번홀에서 파를 하면 첫 메이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가르시아도 악몽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약 2m 거리의 파 퍼트가 홀 왼쪽을 스치며 들어가지 않았다. 다시 기회를 잡은 해링턴은 연장에서 가르시아를 꺾고 우승했다.
23년 전 대참사의 기억을 떠올리며 찾은 카누스티의 18번홀은 평온했다. 오후 8시를 넘겨 찾은 카누스티 골프링크스엔 서서히 노을이 지고 있었다. 18번홀 그린에선 골퍼들이 퍼트하는 모습도 보였다.
골프장 직원은 23년 전 장 방 드 벨드의 참사가 일어난 18번홀 그린으로 안내했다. 오래된 일이어서 그런지 18번홀의 그린은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 평온했다. 지금은 노을이 지는 조용한 코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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