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습을 한국인 스승 김홍화(48)씨가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김홍화씨는 한국 마라톤의 전성기를 이끈 '특급 지도자'였다. 예천 은풍중과 경북체고 등에서 지도자 생활을 한 김씨는 1989년부터 코오롱 육상팀 코치를 맡아 고(故) 정봉수 감독과 함께 황영조의 1992 바르셀로나올림픽 금메달을 일궈냈다. 황영조와 김완기 등 당대의 마라토너를 길러낸 김씨는 1996년 돌연 에티오피아로 향했다.
"당시 훈련이 고되다고 소문이 나서 저에게 배우려는 선수가 한국엔 없었죠. 저 역시 꿈에 굶주린 누군가가 필요했고요." 고산증(高山症)에 시달리며 호된 신고식도 치렀지만 마음은 오히려 행복했다.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이 사방에 널려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마라톤 지도자에겐 그 곳은 천국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에티오피아의 조셉 카우거란 선수는 김씨의 지도를 받고 6개월 만에 2시간23분짜리 선수에서 2시간7분대의 정상급 마라토너가 됐다. 한계를 모르고 진화하는 아프리카 선수들을 보며 김씨는 쾌감을 느꼈다.
그때부터 1년의 반을 아프리카, 반을 한국에서 보냈다. 지금 케냐 고산지대인 야후루루의 훈련 캠프에서 사비를 털어 키우고 있는 유망주가 5명. 지난해 케냐에서 발굴한 잠비아 출신의 엘리젯 반다(20)는 몇 년 안에 한국 선수로 귀화시키려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원래 800m 선수였는데 주법을 보고 마라톤으로 전향시켰죠. 육상계를 깜짝 놀라게 할 수도 있는 재목이에요."
김씨의 궁극적인 꿈은 케냐에 마라톤 학교를 설립하는 것. 아프리카의 유망주를 발굴하고 키우는 동시에 한국 선수들도 초청해 합동 훈련을 시킬 생각이다. 올해 춘천마라톤 챔피언 키마니도 김홍화씨가 공들이고 있는 선수 중 하나였다. 키마니에게 태극기를 달고 뛸 수 있겠냐고 묻자, 그는 잠시 망설인 뒤 김씨를 쳐다보며 "나는 감독님을 믿는다. 한국 대표로 뛰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