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재와의 법리 다툼에 “자신 있다” 판단한 듯
박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자신의 시선은 이미 ‘탄핵 이후’로 옮겨져 있다는 점을 대내외에 선포한 것이나 다름없다. 캐스팅보트를 쥔 새누리당 비주류 모임인 비상시국위원회의가 “흔들림 없이 탄핵안이 가결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황영철 의원·대변인격)이라고 공언한 만큼 탄핵가결은 피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애초 유력했던 ‘4월 퇴진·6월 조기대선’이라는 새누리당 당론을 육성을 통해 받아들이는 이른바 ‘제4차 대국민담화’ 카드가 실익이 없다며 폐기 처분한 배경이다. 다만, “당에서 4월 퇴진·6월 조기 대선을 하자는 당론을 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대로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을 해왔다”는 발언을 공개함으로써 비주류, 특히 영남권을 기반으로 한 의원들의 마음을 마지막으로 흔들어 보겠다는 의지는 분명히 했다.
이제 박 대통령의 운명은 헌재의 손으로 넘어갈 공산이 커졌다는 게 정치권 주류의 판단이다. 그간 박 대통령은 자신을 최순실 일당의 공범으로 지목한 검찰수사 결과에 반발하며 자신을 둘러싼 각종 혐의에 대한 소명을 자신해 왔다. 헌재의 각하결정을 통해 구제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헌재가 탄핵소추를 인용하려면 9명의 재판관 중 6명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하는데, 박한철 헌재소장(내년 1월31일)과 이정미 재판관(3월14일)이 잇따라 퇴임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남은 재판관 중 2명만 탄핵에 반대해도 인용이 결정이 불가능한 상황도 참작했을 가능성도 농후하다.
여권 내부에선 국회의 탄핵표결이 이미 준비해뒀던 박 대통령의 여러 구상 중 하나였을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는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 직후 정치권을 향해 ‘차라리 탄핵에 나서라’는 도발적 메시지를 보낸 바 있다는 점에서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원래 탄핵으로 승부를 보자는 의지가 강했던 것으로 안다”며 “변호인단 구성을 마치면 곧바로 치열한 법리 공방을 위한 준비작업에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
탄핵정국의 장기화를 통해 여권의 재정비와 정권 재창출을 위한 시간벌기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는다.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될 경우 길게는 6개월 동안 헌재의 최종 판결을 기다려야 한다는 점을 고려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직무정지 기간 박 대통령이 암중모색을 유지하다 향후 자신의 안위를 약속할 수 있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등 여권의 유력 대선후보와 정치적 ‘빅딜’을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라는 점에서다. 여권 관계자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 이어 반기문 총장의 등장은 보수층을 흔들, 더 나아가 급속도로 결집할 가능성까지 보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탄핵안 가결 후 자연스레 논의의 장에 서게 될 개헌을 통한 임기단축을 생각했을 수도 있다. 촛불민심이 박 대통령의 조기퇴진에 초점이 맞춰진 가운데 자진 하야를 제외하고 박 대통령의 임기를 단축할 수 있는 ‘법적 절차’가 개헌밖에 없다는 점에서 향후 개헌론이 재점화될 공산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선 개헌이 각 대권 주자 및 세력 간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는 민감한 이슈인 만큼 논의가 쉽게 진전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지만 여권이 ‘박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됐으니 이제 개헌을 논의하자’는 공세적 입장으로 전환할 것이 뻔한 데다, 개헌론자인 손학규 전 더불어민주당 고문 등 일부 야권주자들도 여기에 동의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에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