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연구기관이 보유한 우수 기술의 사업화를 가로막는 제도적 장벽을 낮추고, 초기 기술기업부터 상용화 단계까지 이어지는 투자 기반을 확충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5일 개최된 ‘글로벌 대체투자 컨퍼런스 in BIXPO 2026’ 중 세션2 패널토론에서는 기술 사업화와 투자, 글로벌 시장 진출 과정에서 기업들이 마주하는 과제와 성장 전략이 논의됐다.
공공기술 사업화 막는 '제도적 장벽·연구자 창업' 과제
해당 패널토론은 '기술과 자본의 만남, 에너지 유니콘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주제로 이뤄졌다.
정동재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선임연구원이 좌장을 맡았으며, 마사아키 메자키 일본 GPSS 대표, 이덕준 D3쥬빌리파트너스 대표, 크리스 리 아모지 최고재무책임자(CFO), 장보윤 이테르텐 대표가 패널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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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윤 대표는 연구자에서 창업가로 전환한 경험을 바탕으로 공공기술 사업화의 어려움을 짚었다. 장 대표는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에서 기술이전과 연구소기업 설립 등을 경험한 뒤 차세대 전고체 배터리 핵심 소재를 개발하는 이테르텐을 창업했다. 현재 프리A 투자 라운드를 마무리하는 단계로, 데이터센터 등 안전한 전력저장 환경을 주요 시장으로 보고 있다.
장 대표는 “기술이전은 지금까지 총 8번 정도 했고, 지난 10년 동안 한 기술에 역량을 쏟아부어 기술이전 이후 양산과 엑시트까지 경험했다”며 “공공기술은 국민의 세금으로 개발한 만큼 산업에서 최대한 가치를 평가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연구자의 임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다만 장 대표는 기술이전 이후 사업화 과정에서 연구자가 감당해야 하는 부담이 상당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5년 동안 기술을 양산 단계까지 끌고 가는 과정이 정말 힘들었다”며 “공공기술을 산업으로 이전하는 과정에는 아직도 허들이 많고, 연구자들이 사업화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여건도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공기술 가운데 히트펌프부터 암모니아까지 뛰어난 기술이 많지만, 연구자들이 퇴직하면서 사장되는 기술도 있다”며 “이런 기술을 어떻게 산업으로 끌어내고 투자와 연결할 것인지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술 검증 넘어 '사업 실행력·시장 이해' 갖춘 인재 확보
연구자 중심의 창업팀에 대해서는 기술력과 별개로 사업을 이끌 인력이 필요하다는 투자업계의 의견도 나왔다.
이덕준 대표는 “VC 입장에서 연구자만 있는 팀은 선호하지 않는다”며 “기술도 중요하지만 회사를 만들고 시장에서 직접 사업을 구축하며 마케팅하고 고객을 발굴하는 비즈니스 경험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연구자와 사업 경험을 갖춘 인력이 함께 역할을 나누는 팀이 성과를 낼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이 대표는 “교수들이 창업한 뒤에도 연구논문을 쓰고 연구실을 운영하는 일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있다”며 “팀이 잘 구성돼 각자의 역할 분담이 이뤄져야 사업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공공 연구기관의 기술이 창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도 이어졌다. 이 대표는 “좋은 기술이 대학이나 출연연에서 개발돼도 사업화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어려움이 많다”며 “상업화할 수 있는 원천기술을 가진 연구자들이 더 많이 창업을 시도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에너지 딥테크 기업의 성장 단계에 따라 투자자의 요구와 자금 조달 방식도 달라진다는 분석이 나왔다. 아모지는 암모니아를 활용해 전력을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으로, 2020년 설립 이후 약 3억2000만달러의 자금을 유치했다. 초기에는 기술 검증에 집중했지만 최근에는 미국 휴스턴 공장을 기반으로 상업화와 매출 확보에 나서고 있다.
크리스 리 CFO는 “회사를 처음 시작한 뒤 약 5년 동안 기술 검증을 이어갔다”며 “드론과 트랙터, 트럭을 거쳐 세계 최초로 암모니아 추진 예인선을 만들었고, 최근에는 휴스턴에 공장을 지어 본격적인 상업화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성장 과정에서 조직의 변화와 인재 확보가 중요했다고 강조했다. 리 CFO는 “기술기업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라며 “훌륭한 인재를 영입하는 것뿐 아니라 회사의 DNA를 계속 바꿔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성장 단계별 VC·그로스펀드·인프라 금융 등 연계 필요
자금 조달 전략 역시 기업의 성장 단계에 맞춰 달라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크리스 리 CFO는 “초기에는 시장 규모와 팀의 역량, 미래 비전이 중요하지만 사업이 진행될수록 투자자들이 원하는 것이 달라진다”며 “초기 투자자는 기술과 성장 가능성을 보지만, 후기로 갈수록 자산운용사와 보험사, 인프라펀드 등은 현금흐름과 안정성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아모지는 대규모 설비투자에 따른 위험을 줄이기 위해 직접 모든 공장을 짓는 대신 전략적 투자자와의 협력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리 CFO는 “GS와 삼성중공업 등 전략적 파트너와 협력하면서 자본 투입에 따른 위험을 줄이고 기술 성숙도를 높였다”며 “다음 투자 단계에서 필요한 조건을 미리 예측하고 그에 맞춰 회사를 만들어가는 실행력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덕준 대표도 에너지 딥테크 기업의 후속 투자를 뒷받침할 자본시장의 다양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매출이 많지 않더라도 대규모 실증을 마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기업에 투자할 자본이 필요하다”며 “미국에는 이런 성장 단계의 위험을 감수하는 자본이 상대적으로 다양하지만 한국은 아직 부족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술 검증을 마친 기업이 인프라 금융으로 넘어가기 전 단계에서 성장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그로스 펀드나 사모펀드(PE) 등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글로벌 시장 진출과 관련해서는 국가별 정책과 산업 환경에 맞춘 사업 전략이 중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장 대표는 “딥테크 기업은 국내에서 일정 수준의 성과를 낸 뒤 해외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두고 움직여야 하는 분야”라며 “기술 중심 기업은 국내 네트워크에 비해 해외 네트워크가 부족해 진출 방향을 잡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소재·제조업 기반 기업에는 중국 시장에 대한 전략적 접근도 중요한 과제라고 짚었다. 그는 “우리나라처럼 제조업이 강한 산업에서 스타트업이 살아남으려면 중국이라는 시장을 어떻게 글로벌 관점에서 접근할 것인지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모지 역시 국가별 에너지 정책과 산업 수요에 맞춘 현지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리 CFO는 “기술 하나를 가지고 여러 국가에서 사업을 하더라도 각국의 에너지 전략과 정책이 다르고, 기업 고객이 기술을 도입하려는 이유도 다르다”며 “국가별 상황에 맞춰 사업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역 공동투자·수익 공유로 에너지 프로젝트 수용 높여야
에너지 프로젝트 개발 과정에서는 기술의 경제성뿐 아니라 지역사회와의 이해관계 조정도 중요한 요소로 꼽혔다. 일본을 중심으로 수력·지열·풍력·바이오가스·태양광 프로젝트를 개발하는 GPSS는 지역 주민을 단순한 사업 대상이 아닌 공동 사업자로 참여시키는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메자키 대표는 “사업에서는 고객은 가능한 한 낮은 가격에 사려 하고 판매자는 높은 가격에 팔려 하기 때문에 이해관계가 충돌한다”며 “지역사회와 공동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발전소의 소유권과 수익을 나누는 방식으로 이런 갈등을 해결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재생에너지 프로젝트가 개발부터 실제 운영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만큼 지역사회의 참여가 사업 지속성을 좌우한다고 설명했다. 메자키 대표는 “프로젝트 개발에는 5년에서 10년까지 걸리기도 한다”며 “지역 주민이 공동 소유자로 참여하면 발전소가 우리만의 사업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사업이 된다”고 말했다.
실제 일본 니가타 지역의 지열 프로젝트 사례도 소개했다. 온천 지역에서는 지열발전이 온천수 고갈이나 온천 사업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주민 반대가 발생할 수 있다. GPSS는 온천에서 사용하고 남는 고온의 물을 활용해 전력을 생산하는 사업을 추진하면서도 지역 주민과의 합작 구조를 통해 합의를 이끌어냈다.
메자키 대표는 “기술적으로나 논리적으로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사업이라도 지역 주민의 정서와 감정은 논리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며 “지역사회와 신뢰를 쌓고 공동사업 구조를 만드는 데 충분한 시간을 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이 실제 시장에서 지속적인 수요를 확보할 수 있는지도 사업화의 핵심 기준으로 제시됐다. 메자키 대표는 “기술을 평가할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은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수요를 해결할 수 있는지 여부”라며 “전기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 사람들이 실제로 원하는 것은 난방과 이동, 컴퓨팅 등 전기를 통해 얻으려는 서비스”라고 말했다.
이어 “표면적인 수요보다 더 깊은 곳에 있는 인간의 근본적인 필요를 찾아야 한다”며 “그런 수요를 해결하는 기술이라면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시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토론 말미에는 각 기업의 향후 성장 방향도 공유됐다. 리 CFO는 “전력 사업은 기술만 좋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밸류체인과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며 “한전과 암모니아 공급업체, EPC 기업, 고객 등 여러 주체와 협력해 한국에도 기여할 수 있는 사업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는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과 개념검증(PoC)을 진행하며 시장의 요구를 살피고 있다”며 “시장 상황에 따라 피벗할 수 있는 준비를 하면서도 어디까지 사업 방향을 바꾸고 핵심 사업에 집중할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함께하는 엔지니어들의 열정과 기술, 미래를 흔들림 없이 이끌어가는 것이 대표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토론에서는 에너지 딥테크 기업의 성장이 개별 기술의 우수성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이 거듭 확인됐다. 공공기술의 창업·사업화 경로를 넓히고 성장 단계별 자본을 연결하며, 사업 실행 역량과 지역사회·산업 파트너십을 함께 구축하는 것이 에너지 유니콘 육성의 주요 과제로 제시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