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이날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올린 장문의 글이었다. 김 실장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제목이 ‘차원이 다른 나라 : AI 시대 한국의 장기 전략’인 글을 남겼다. 인공지능(AI) 시대 도래로 국가 산업이 재편되고, AI 인프라 기업의 초과이익이 정부의 초과세수로 이어질 경우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제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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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실장은 AI 시대 호기를 맞은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국민 사이의 양극화를 우려했다. 이른바 ‘K자형 성장’에 대한 걱정이었다. 김 실장은 “국가가 해야 할 일은 누구에게나 생애 1회 창업 기회 보장, 실패 후 재기 안전망, AI 기반 창업 교육, 지역 단위 창업 인프라 구축 등의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라며 “단순 복지가 아니라 AI 시대 생산성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내놓은 아이디어가 ‘국민배당금’이다. 국민배당금의 재원은 AI 시대 반도체 호황으로 발생할 수 있는 초과세수다. 김 실장은 “초과세수가 생기지 않는다면 국민배당금은 허황된 이야기”라면서 “그러나 논지가 맞다면, 아무 원칙 없이 그 초과이익의 과실을 흘려보내는 것이야말로 무책임한 선택일 수 있다”고 썼다.
김 실장은 북해 유전 수익을 국민 미래를 위해 적립하는 노르웨이 국부펀드와 비교하기도 했다. 초과세수가 특정 계층에만 쓰이지 않고 국민 전체를 위해 활용돼야 한다는 제언이다. 김 실장은 “한국이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질문은 같다”며 “그 과실의 일부는 전 국민에게 구조적으로 환원되어야 하고 이것이 설계의 정당성이자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시장의 반응이었다. 시장에서는 정부가 반도체·AI 기업의 초과이익을 사실상 추가 과세 대상으로 삼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번졌다. 김 실장의 취지는 초과세수 활용 방안에 가까웠지만, ‘국민배당금’이라는 표현이 정책 리스크로 받아들여졌다.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들이 이를 전했고, 외국인 투자자들은 대규모 매도에 나섰다. 장 초반 8000선을 목전에 뒀던 코스피가 2.29% 하락한 7643.15에 마감한 것은 이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원망의 화살은 김 실장을 향했다. 특히 야권에서 강하게 비판했다. 나경원 의원은 SNS를 통해 “김 실장의 포퓰리즘 선언 한 마디에 코스피가 증발하고 개미 투자자들의 계좌가 큰 타격을 입었다”고 비판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이재명 정부가 반도체 기업에 무슨 기여를 했는가”라고 물으며 “반기업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기업인들도 ‘국민배당’에 대한 의미를 놓고 분분한 해석을 했다.
여권 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있었다. 여선웅 더불어민주당 부대변인은 “김용범 정책실장 글이 잘못 알려진 측면이 있다”면서도 “외국인들이 한국 주식시장이 안정적인 투자처라는 인식을 갖게 될 때까지 정책실장의 언어는 더 신중해야 한다”고 평했다.
“배당이란 단어에 천착되면 안돼”
김 실장을 두둔하는 목소리도 일부 있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평소 강조했던 AI 시대 기본소득과 김 실장의 국민배당금 아이디어가 맞닿아 있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경기도지사로 재직하던 시절 그와 함께 ‘데이터 배당’ 법리적 근거를 만들었던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배당이라는 단어에 천착하지 말고 그 취지가 무엇인지 집중해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초과세수를 적절하게 잘 써야 한다. 국민에게 돌아갈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내용으로 이해하면 충분하다”고 해석했다.
이어 “가칭 국민배당금을 정책적 메시지로 봐야지, 정책 수단으로 보면 안 된다”면서 “정책 수단은 법리적 기반을 바탕으로 적절하게 뜻을 실현해 가면 된다”고 설명했다.
국민배당 아이디어가 기업의 수익이 아닌 ‘초과세수’에서 비롯됐다는 점도 강조됐다. 안도걸 민주당 의원은 “AI·반도체 산업의 초호황으로 초과세수가 발생할 경우 국가 차원의 전략적·체계적 활용 원칙을 미리 설계하자는 것”이라면서 사태 진정에 나섰다. 강준욱 전 청와대 국민통합비서관은 “갈 길이 멀다 해도 AI가 세상 모든 변화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청와대 관계자는 이번 사안과 관련해 “청와대 내부 논의나 검토와 무관한 개인 의견”이라고 선을 그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