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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수익률의 미스터리: '현행 제도'의 한계[김병철의 퇴직연금 개혁 시나리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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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기자I 2026.08.11 15: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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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주인은 근로자인데 계약은 기업이 하는 계약형이 문제
금융기관, 근로자보다 기업에 유리한 판단할 수밖에 없어
근로자의 돈을 전문가가 굴리는 기금형 도입이 해법

[칼럼니스트=김병철 한국퇴직연금개발원 대표] “고객님, 지난 10년 동안 고객님 퇴직연금 수익률은 연평균 2%입니다.”

은행 창구에서 이 말을 들은 이 과장은 귀를 의심했습니다. “네? 국민연금은 매년 7%씩 수익을 낸다는데, 도대체 제 돈은 왜 이 모양입니까?” 직원은 난처한 표정으로 대답합니다. “안전한 예금 위주로 운용되어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고객님이 예금을 선택하신 거구요.” 이 과장은 말문이 막힙니다.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돌아서 나오는 길에 분통이 터집니다. “내가 금융 전문가도 아니고, 금융기관이 알아서 잘 굴려줘야 하는 거 아냐? 수수료는 꼬박꼬박 떼어가면서.”

500조 원의 거대한 자금이 있는데, 정작 그 돈의 수익률은 기대보다 적습니다. 이것을 금융기관의 잘못이나 개인의 무관심 탓으로만 돌릴 수 없습니다. 판 자체가 잘못 짜인 ‘구조(Structure)’의 문제입니다. 바로 한국 퇴직연금의 태생적 한계인 현행 계약형(Contract-type, 회사와 금융기관이 1:1로 개별 계약을 맺어 연금을 운영하는 방식) 제도 때문입니다.

2% 수익률의 미스터리: '현행 제도'의 한계[김병철의 퇴직연금 개혁 시나리오]3


기형적 삼각관계 — 돈은 내가 내는데, 고객은 사장님?


퇴직연금의 주인은 분명 근로자입니다. 하지만 현행 계약형 제도 아래에서 근로자는 ‘제3자’의 위치에 놓입니다.

1. 기업(사용자) — 퇴직연금사업자(금융기관)를 선정하고 계약을 맺는 ‘갑’

2. 금융기관(사업자) — 기업과 계약을 맺고 퇴직연금을 제공하는 ‘을’

3. 근로자(가입자) — 돈의 실제 주인이지만, 계약 과정에서는 소외된 ‘병’

이 구조에서는 금융기관이 근로자를 위하고 싶어도, 영업의 우선순위는 계약 권한을 가진 기업 담당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시장의 경쟁은 자연히 “누가 근로자의 수익률을 높여주는가”가 아니라, “누가 기업에게 더 나은 금융 혜택(대출 금리 우대 등)을 제공하는가”로 흐릅니다.

이 문제를 경제학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이름하여 주인-대리인 문제(Principal-Agent Problem). 적립금의 진짜 주인(Principal)은 근로자이지만, 계약을 맺을 법적 권한은 기업(사용자)에게 있습니다. 정상적이라면 대리인(금융기관)이 주인(근로자)의 이익을 최우선해야 하지만, 현행 계약형 구조에서 금융기관의 실질적인 고객은 기업입니다.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수천 명 근로자의 수익률을 1%포인트 올려주기 위해 머리를 싸매는 것보다, 회사 대표나 담당자에게 기업 대출 금리를 0.1%포인트만 우대해 주는(깎아주는) 편이 영업상 훨씬 유리합니다. 개별 근로자의 퇴직금 잔액은 작지만, 기업이 빌리는 대출금은 수십억, 수백억 원에 달하기 때문에 기업에게는 그 10분의 1인 0.1%포인트의 우대가 매우 큰 혜택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연구자들은 이 구조를 삼중고(三重苦)라 부릅니다 — ① 근로자 의사가 배제된 대리인 문제, ② 기업과 금융기관 사이의 이익 교환이 근로자의 연금 이익을 침해하는 구조, ③ 이런 이해상충을 아무도 감시하지 않는 거버넌스의 부재.

이것은 금융기관의 잘못이라고만 할 수 없습니다. 이익의 교환이 구조적으로 강제될 수밖에 없도록 설계된, 현행 제도 자체의 모순입니다.

흩어진 개인은 약하다 — ‘소매가’의 비극

현행 계약형 제도의 또 다른 구조적 문제는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국민연금은 1500조원이 넘는 돈을 한 바구니에 담아 굴립니다. 이 거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협상하여 수수료를 낮추고 고급 투자 정보에도 접근합니다. 이것을 대량 구매를 통해 가격을 대폭 낮추는 ‘도매가(Wholesale)’ 거래라고 합니다. 반면 한국의 퇴직연금, 특히 DC형은 근로자 개개인이 각자도생하는 구조입니다. 김 대리의 3000만원, 이 과장의 5000만원이 뿔뿔이 흩어져 각자 금융기관을 상대해야 합니다. 개별 가입자는 협상력을 가질 수 없고, 마트에서 낱개로 물건을 사는 것처럼 상대적으로 비싼 ‘소매가(Retail)’ 상품을 거래하게 됩니다.

여기에 비용도 이중으로 발생합니다. 펀드를 운용하는 자산운용사에 내는 ‘펀드 보수’와, 계좌를 관리하는 금융기관에 내는 ‘운용·관리 수수료’가 각각 나갑니다. 마치 백화점에서 산 옷값(펀드 보수)과 별도로, 백화점 입장료(운용·관리 수수료)를 따로 내는 셈입니다. 판매와 관리가 분리된 현행 계약형 구조에서는 피할 수 없는 비용 낭비입니다.

결국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은 연금 시장에서도 진리입니다. 현행 계약형 제도는 근로자들을 모래알처럼 흩어놓음으로써, 구조적으로 비용 효율이 떨어지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고 말았습니다.

왜 하필 ‘계약형 구조’였나 — 법이 막아버린 선택지

한 가지 의문이 남습니다. 왜 처음부터 여러 근로자의 돈을 모아 전문가가 굴리는 방식 즉, 기금형 구조로 설계하지 않았을까요? 답은 법 해석에 있었습니다. 2005년 제도가 만들어질 때 가장 중요한 과제는 ‘근로자의 수급권 보호’ — 회사 금고에 돈이 있어도 그 돈의 진짜 주인은 근로자임을 법으로 보장하는 일 — 였습니다. 이를 신탁계약(돈의 소유권은 나에게 두고 금융기관에 신뢰를 바탕으로 맡기는 계약)이라는 법적 틀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당시 정부는 여러 근로자의 돈을 하나로 모아 전문가에게 일임하여 굴리는 방식(집합운용)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해석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해석은 기존의 금융 영업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었던 금융기관들에게 매우 유리한 해석이었습니다. 결국 근로자가 수많은 상품 중 하나를 직접 골라야 했던 진짜 이유는, 애초에 “전문가에게 뭉쳐서 맡긴다”라는 선택지 자체가 법 해석에 가로막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법 해석의 장벽을 깨고 “전문가에게 뭉쳐서 맡긴다”라는 집합운용의 길을 여는 것이, 지금 추진 중인 기금형 활성화 관련 법안들입니다. 여러 근로자의 자금을 하나의 커다란 기금으로 모아 전문가가 책임지고 운용하는 ‘기금형 제도’는 이 장에서 짚은 두 가지 고질병인 대리인 문제와 소매가의 비극을 동시에 치료할 수 있는 강력한 처방입니다. 다만 기금형이 도입된다고 해서 기존 계약형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두 제도가 공존하는 과도기에는, 제도의 종류보다 “누가 근로자의 이익을 위해 정직하게 작동하는가”가 더 중요해집니다. 결국 진짜 중요한 핵심은 의사결정부터 관리, 실행, 그리고 평가와 피드백까지 이어지는 체계적인 순환 구조(거버넌스)를 어떻게 바로 세울 것인가에 있습니다. 이 구체적인 해법은 Part 3에서 본격적으로 펼쳐집니다.

‘주인’이 그 권리를 찾아야 합니다

지난 20년간 우리는 구조적 모순을 방치해 왔습니다. 수익률이 낮아도 수수료는 꼬박꼬박 발생하고, 기업은 퇴직연금 제도의 도입만으로 역할을 다했다고 여기며, 근로자는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방치되는 구조. 이 악순환을 끊으려면 현재와 같은 기업과 금융기관의 1:1 계약 관계를 넘어, 근로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전문가들이 주도권을 쥐는 새로운 틀이 필요합니다.

이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는 또 하나의 문제가 겹쳐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원리금보장 편향과 지금 살펴본 구조적 저효율은 서로 다른 문제이지만, 결과는 같습니다 — 어렵게 모은 돈이 자라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정체된 돈에는 또 다른 함정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애써 쌓아 올린 돈이 이직이라는 사건 하나로 산산이 조각나 사라지는 문제입니다. 다음 장에서는 평생직장이 사라진 시대, 유리처럼 깨지기 쉬운 한국형 퇴직연금의 구조적 취약점을 진단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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