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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책임투자인가”…거수기 운용사에 내민 국민연금 ‘경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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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의 기자I 2026.09.03 20:2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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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지니포럼]
상법 우회 안건에 국내 운용사 83% 찬성…'거수기' 실태 지적
겉으론 스튜어드십, 속으론 기업 편?…질적 평가로 자금 배정·회수 연계
원종현 “외부 압박에 과속 안 해…기금 독립성과 원칙이 최우선”

[이데일리 마켓in 지영의 기자] “경영상 목적의 자기주식 활용 안건에 국내 주요 자산운용사들이 83%나 찬성했다. 과연 이것이 책임 있는 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 방향이 맞는지 의문이 남는다”

이동섭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수탁자책임실장은 3일 전북 전주시 국민연금공단 글로벌기금관에서 열린 제7회 지니포럼의 ‘제3회 NPS포럼’에서 개정 상법의 취지를 우회할 우려가 있는 정관 변경 안건에 국내외 기관투자자들이 대거 찬성하고 있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이 실장은 “충실한 수탁자책임 활동을 위한 제도는 상당 부분 마련됐지만 기업의 이사와 기관투자자, 의결권 자문기관이 이를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며 “국민연금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 수탁자책임 활동을 자본시장 전반으로 확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세 차례 이뤄진 상법 개정으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은 회사뿐 아니라 주주로 확대됐다.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사의 집중투표제 도입과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자사주 원칙적 소각 등 일반 주주의 권리를 강화하는 장치도 마련됐다.

그러나 일부 기업들은 정관 개정을 통해 새 제도의 취지를 우회할 수 있는 안건을 내놓고 있다는 판단이다. 이사 임기를 ‘3년’에서 ‘3년 이내’로 바꾸거나 이사 수에 상한을 두는 안건, 경영상 목적으로 자사주를 보유·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정관 변경 등이 대표적이다.

“그게 책임투자인가”…거수기 운용사에 내민 국민연금 ‘경고장’
국민연금은 이사 임기 유연화와 이사 수 상한 설정, 전자주주총회 배제 등에 관한 안건에 모두 반대했다. 경영상 목적의 자사주 보유·활용을 허용하는 정관 변경에도 대부분 반대표를 행사했다.

이 실장은 “개정 상법을 교묘하게 피해 가려는 정관 변경으로 보이는 안건들이 실제 주주총회에서는 대부분 가결됐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이 반대한 안건 가운데 이사 임기 유연화 안건의 가결률은 95%, 이사 수 축소·상한 설정은 92%, 경영상 목적의 자사주 활용안은 100%에 달했다.

기관투자자들의 높은 찬성률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이 실장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주요 자산운용사들의 찬성률은 이사 임기 유연화 안건이 6%, 이사 수 축소·상한 설정이 31%, 경영상 목적의 자사주 활용안이 83%였다. 해외 연기금과 대형 자산운용사의 찬성률은 이보다 높았다. 이사 임기 유연화 안건에는 66%, 이사 수 축소·상한 설정에는 74%, 경영상 목적의 자사주 활용안에는 99%가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결권 자문회사의 권고를 기관투자자들이 사실상 그대로 따르는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됐다. 국민연금이 국내외 의결권 자문회사 네 곳의 권고 현황을 비교한 결과 기관투자자들의 찬성률이 이들이 이용하는 자문회사의 찬성 권고율과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이 실장은 “아직 검증해 보지는 않았지만 국내외 기관투자자들이 의결권 자문기관의 의견을 사실상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며 “위탁운용사뿐 아니라 국민연금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결권 자문기관도 제대로 선정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업 이사회의 실질적인 역할도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연금은 매년 100여차례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대화와 관여 활동을 진행하고 있지만 일부 기업에서는 사외이사가 충분한 자료를 제때 제공받지 못하거나 투자·자본시장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이사가 부족한 사례가 확인됐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사회 개최 하루 전에 자료를 받아서는 사외이사가 안건을 충실하게 검토하기 어렵다”며 “제도가 마련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이사회가 실제로 주주를 위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지난 7월2일 기금운용위원회에서 확정한 위탁운용사 수탁자책임 활동 이행점검 체계를 활용해 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를 질적으로 평가할 방침이다. 평가는 위탁운용사의 수탁자책임 활동 체계와 이해상충 관리, 의결권 행사의 적정성 등 세 가지 영역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금융지주 계열 운용사나 대기업과 거래 관계가 있는 운용사가 주주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이해상충도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예정이다.

평가 결과는 신규 위탁운용사 선정과 기존 운용사 정기평가에 반영된다. 이행 수준이 우수한 운용사에는 자금을 추가로 배분하고, 미흡한 운용사에서는 자금을 회수하는 근거로 활용할 계획이다.

이 실장은 “위탁운용사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주주권과 의결권을 행사하면 기업가치가 높아지고 국민연금의 수익성도 개선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며 “개정 스튜어드십코드를 계기로 수탁자책임 활동을 자본시장 전반으로 확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튜어드십코드는 도입 10년 만인 지난 7월 전면 개정돼 오는 2027년 1월부터 시행된다. 적용 대상이 상장주식에서 채권과 인프라, 부동산, 비상장 자산 등으로 확대됐고 여러 기관투자자가 공동으로 기업과 대화하는 협력적 관여 활동도 공식화됐다. 자산 소유자가 위탁운용사와 의결권 자문기관의 이행 수준을 점검해야 한다는 원칙도 담겼다.

“그게 책임투자인가”…거수기 운용사에 내민 국민연금 ‘경고장’
이어진 패널토론에서는 이태석 한국개발연구원(KDI) 박사가 좌장을 맡고 김혜리 국민연금연구원 박사, 원종현 전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장, 송민경 한국ESG기준원 박사가 개정 스튜어드십코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보완 과제를 논의했다.

김혜리 박사는 기관투자자들의 협력적 관여 활동을 활성화하려면 자본시장법상 불확실성을 먼저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러 기관이 공동으로 기업과 대화할 경우 공동보유자로 간주돼 ‘5% 룰’에 따른 공시 의무나 경영권 개입 논란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박사는 일본이 스튜어드십코드 개정에 앞서 경영권 개입 목적이 없는 건설적 대화를 공동보유자 합산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제도를 정비한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우리 자본시장도 협력적 관여 활동을 뒷받침할 법제적 보완이 필요하다”며 “국민연금은 기금의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수익성 제고에 기여하는지를 기준으로 참여 여부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형식적인 이행 점검을 넘어 기업가치가 실제로 개선됐는지를 평가해야 한다는 제언도 내놨다. 일본 공적연금인 GPIF는 피투자기업을 상대로 위탁운용사와의 대화가 실제로 유익했는지 조사하고, 운용사의 자체 보고서와 기업의 평가를 교차 검증하고 있다.

김 박사는 “면담 횟수나 의결권 행사 비율과 같은 정량적 수치보다 기업과의 대화가 실제 기업가치 제고로 이어졌는지를 평가해야 한다”며 “국민연금도 위탁운용사뿐 아니라 기금이 직접 수행하는 수탁자책임 활동에 대해 시장의 피드백을 받는 자체 평가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원종현 전 위원장은 상법과 스튜어드십코드가 개정됐다고 해서 국민연금이 외부의 요구에 따라 수탁자책임 활동의 속도를 무조건 높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국민연금이 그동안 실무적으로 축적한 수탁자책임 활동이 이번 제도 개정의 토대가 된 만큼 외부의 속도 요구보다 기금이 세운 원칙과 기준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원 전 위원장은 “상법과 스튜어드십코드가 개정되면 국민연금의 행동이 어떻게 바뀌겠느냐는 언론의 질문을 많이 받았지만, 그때마다 ‘바뀔 것이 없다’고 답했다”며 “국민연금이 실무적으로 쌓아온 수탁자책임 활동의 방식이 오히려 표본이 됐고, 이번에 그 표본이 규정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스튜어드십코드가 도입 이후 10년 동안 개정되지 못한 점을 짚으며 그동안 국민연금이 기업 관여 활동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설명했다. 일본이 제도 시행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를 반영해 여러 차례 코드를 개정한 것과 달리 한국에서는 제도 개선 논의가 오랜 기간 정체돼 있었다는 지적이다.

원 전 위원장은 “이전에는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를 시행하고 기업 관여 활동을 할 때마다 여러 장애물을 헤치며 힘들게 나아가는 느낌이었다”며 “최근에는 반대로 길이 갑자기 확 열리고 뒤에서 더 빨리 가라고 재촉하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연금은 외부의 속도 요구에 맞추기보다 스스로 세운 원칙과 기준에 따라 정속으로 움직여야 한다”며 “필요하다면 오히려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수탁자책임 활동의 본래 목적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개정의 가장 큰 의미로는 국민연금이 사실상 홀로 수행해 온 수탁자책임 활동에 다른 기관투자자들이 동참할 기반이 마련됐다는 점을 꼽았다. 위탁운용사의 이행 수준을 점검하고 그 결과를 실제 자금 배분에 반영하면 스튜어드십코드가 선언적 제도에 머물지 않고 자본시장 전반의 행동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원 전 위원장은 “과거에는 여러 사람이 있는 전장에서 국민연금만 혼자 앞으로 돌격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며 “이제는 이행 점검을 통해 국민연금의 위탁운용사부터 시작해 자본시장 전체가 함께 움직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스튜어드십코드가 제도의 영역에서 실제 이행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전환점이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다만 수탁자책임 활동이 정부 정책이나 외부 요구에 휘둘리지 않도록 국민연금의 독립성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튜어드십코드의 본질은 수탁자가 가입자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데 있는 만큼 다른 정책적 목적이 기금운용 판단에 과도하게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그는 “국민연금은 전체 국민을 가입자로 두고 그들의 이익에 책임을 지는 기관”이라며 “수탁자책임 활동의 본질은 기금 수익률을 높이고 국민연금의 미래 지급 가능성을 지키는 데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이나 법률, 정부를 비롯한 다른 요인에 의해 본래 목적이 흔들리지 않도록 국민연금이 보다 강한 독립성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민경 박사는 개정 상법의 취지를 이사회 전체에 폭넓게 적용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사회나 산하 위원회가 주주에 대한 책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 해당 이사의 연임 안건에 반대하는 등 의결권 행사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스튜어드십코드 적용 대상이 채권 등으로 확대된 만큼 채권 투자자로서의 수탁자책임 원칙과 절차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녹색채권과 사회적채권 등 ESG채권으로 조달한 자금이 당초 목적에 맞게 사용됐는지, 실제 성과로 이어졌는지를 점검해 공개해야 한다고 밝혔다.

송 박사는 “스튜어드십코드는 주주총회에서 반대 의결권을 거의 행사하지 않던 국내 기관투자자의 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꿨다”며 “전자주주총회와 전자투표 확대에 맞춰 국민연금의 역할도 더 적극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위탁운용사에 의결권 행사를 맡기더라도 전체 행사 내역을 국민이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며 “국민연금이 국내 ESG 분석과 의결권 자문 등 관련 시장의 기반을 확대하는 역할도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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