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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조장은 넘치는데 술은 안 팔린다…전통주, 공급과잉 '경고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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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정 기자I 2026.04.30 15:01:30

증류식 소주 30% 급감… ‘원소주 돌풍’ 꺼지자 프리미엄도 꺾여
하이볼에 편의점 매대 뺏기고, 온라인 수수료엔 허덕
“시대착오적 전통주 기준 뜯어고치고 라이프스타일 맞춘 혁신 필요”

[이데일리 신수정 기자] 지난해 프리미엄 증류식 소주 매출이 30%나 급감하는 등 전통주 시장에 심각한 ‘공급 과잉’ 경고등이 켜졌다. 한때 오픈런을 부르던 연예인 소주의 ‘반짝 특수’가 꺼지고 편의점 매대마저 캔 하이볼 등 RTD(즉석 음용주)에 내주면서 빚어진 참사다. 업계 안팎에선 낡은 규제 혁파와 수출 판로 개척 없이는 영세 업체들의 줄폐업 치킨게임을 피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서울시내 한 마트에 다양한 막걸리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시장 비중 1.4%로 후퇴…늘어난 양조장 무색한 초라한 성적표

30일 농림축산식품부가 조사한 주류산업정보에 따르면 2024년기준 전통주 제조면허는 1957개로 전년보다 8.0% 늘었지만, 출고금액은 1374억원으로 6.9% 줄었다. 전체 주류 시장내 전통주 비중(출고가 기준)도 1.4%까지 내려앉으며 2년 연속 뒷걸음질 쳤다.

더 눈에 띄는 건 ‘잘 팔리던 술’마저 꺾였다는 점이다. 프리미엄 전통주로 꼽히던 증류식 소주는 지난해 출고금액이 30.1%나 하락했다. 이는 2022~2023년 유통가를 강타했던 ‘원소주’ 등 연예인 프리미엄 소주 돌풍이 잦아들면서 발생한 기저효과로 풀이된다. 트렌드에 민감한 MZ세대가 오픈런까지 하며 지갑을 열던 반짝 특수가 끝나자 거품이 빠진 것이다.

현장의 체감 온도는 더 냉정하다. 한 전통주 양조장 관계자는 “시음 행사나 체험 프로그램은 예약이 꽉 차는데, 정작 제품 구매로 이어지는 비율은 기대보다 낮다”며 “SNS에서 사진 찍기용으로 관심은 높지만 반복적인 일상 구매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현상은 공급 증가 속도가 수요를 훌쩍 앞지른 결과다. 전통주 제조면허는 청주(42.4%), 증류식 소주(15.0%), 일반증류주(11.1%) 등 전 품목에서 증가했다. 창업 진입 장벽이 낮아지면서 소규모 양조장이 우후죽순 늘어난 것이다.

RTD·하이볼 침공에 밀린 편의점 매대·온라인은 수수료 장벽

문제는 만들어도 팔릴 길이 좁다는 점이다. 전통주 업체 매출의 97.4%는 여전히 국내 내수 시장에 묶여 있고, 오프라인 직판 비중이 66.6%에 달한다. 전통주는 국내 주류 중 유일하게 ‘온라인 통신판매(이커머스 등)’가 허용된 강력한 무기가 있지만, 영세한 양조장들은 값비싼 마케팅 비용과 플랫폼 수수료를 감당하기 버거운 실정이다. 결국 자본력을 갖춘 일부 대형 업체 위주로 승자독식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

최근 크게 변한 주류 소비 환경도 직격탄이 됐다. 주류 소비의 핵심 채널로 떠오른 편의점 매대에서 전통주가 설 자리를 잃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주류 시장은 캔 하이볼, RTD(즉석 음용주)처럼 ‘가볍고 간편한 술’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반면 전통주는 상대적으로 가격대가 높고 음용 방식이 제한적이라 대형 유통채널의 선택을 받기 어렵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한 번 경험하는 이벤트성 술에서 일상적으로 마시는 술로 넘어가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한계”라고 지적했다.

결국 시장은 파이는 그대로인 채 작게 나눠 먹는 구조로 전락하고 있다. 전통주 업체의 54.0%는 종사자 2인 이하였고, 영업이익 2000만원 미만 업체도 47.9%에 달했다. 양조장 간판은 늘었지만 상당수가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위태로운 상황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젊은 층이 양조장 체험에는 몰리면서도 술은 사지 않는다는 건, 전통주를 일상에서 즐기는 주류가 아닌 일회성 놀이로만 소비하고 있다는 증거”라며 “원료와 제조장 위치만으로 규정하는 시대착오적인 전통주 규제를 현실화하는 한편, 업체들도 소비자들의 입맛과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제품을 소용량화·다각화하는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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