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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갇힌 아시아 선원 2만명…“우리는 전쟁 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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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성훈 기자I 2026.05.06 15:04:59

필리핀·인도네시아·인도 등 저임금 亞국가 출신 다수
봉쇄 풀려도 교대 인력 없어…6개월 더 발 묶이는 현실
식수·식량 부족에 미사일 위협까지…사상자도 속출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미국과 이란 간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페르시아만에 발이 묶인 아시아 선원들이 약 2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쟁 한가운데 노출된 이들은 식수와 식량 부족, 미사일 위협 등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AFP)
5일(현지시간)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페르시아만에서 항해 중이던 한 화물선 선장 칸씨는 자신의 배 근처에 있던 유조선이 미사일에 맞아 폭발했으며, 또 다른 선박 한 척도 자신의 배 앞쪽 몇 미터 지점에서 잔해에 맞아 침몰했다고 전했다. 칸 선장과 선원들은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세 차례 시도했지만 매번 이란군에 의해 되돌려보내졌다. 신변 안전 우려로 본명과 선박명을 밝히지 않은 칸 선장은 “두렵다. 집에 가고 싶다”며 “우리는 전쟁 포로와 같다”고 토로했다.

페르시아만에 발이 묶인 선원 대부분은 필리핀·인도네시아·인도 등 상대적으로 빈곤한 아시아 국가 출신이다. 이들 국가는 전 세계 교역 물량의 85%를 운송하는 상선의 선원 상당수를 공급하는데, 정작 자신들과 무관한 분쟁에 점점 더 많이 휘말리고 있다는 것이 이코노미스트의 설명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호송 작전 ‘프로젝트 프리덤’을 발표했지만 이마저도 일시 중단되면서 사태 해결은 더욱 요원해진 모양새다. 호르무즈 봉쇄가 풀린다고 끝이 아니다.

국제운수노련(ITF)은 회원들이 분쟁 지역 항해를 거부하고 본국 송환을 요구할 권리를 확보했지만, 회사가 교대 인력을 찾지 못하면 선원들은 법적으로 배를 떠날 수 없다. 자원해 교대에 나서는 사람이 거의 없고, 중동발 항공권은 비싸고 구하기 어렵다. 걸프 국가는 비자 발급도 까다롭다.

해운사 단체 IMEC의 프란체스코 가르지울로는 “해협이 다시 열린다 해도 이 지역 선원들이 어느 정도 정상 상태를 회복하기까지 최소 6개월은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직접적인 사상자도 이미 다수 발생했다. 지난달 말 이란이 나포한 선박 2척에는 필리핀인 15명이 타고 있었다. 다행히 이들은 무사했지만, 인도인과 태국인 등 최소 10명의 선원이 전쟁 중 목숨을 잃었다.

점심 식사를 준비하던 도중 포탄 공격을 받아 동료 1명을 잃었다는 한 선원(가명 아르준)은 “평소엔 배가 살아 숨 쉬는 느낌이었지만 폭발 이후에는 소리도, 리듬도 없었다. 유령선 같았다”고 회상했다. 아르준과 선원들은 양동이로 바닷물을 퍼 거대한 ‘불덩이’에 끼얹으며 사투를 벌였고 이후 가까스로 구조됐다.

살아남은 선원들의 상황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선주들 중 일부가 분쟁 지역 항해 시 임금 두 배와 본국 송환을 보장하는 단체협약에 서명했지만 ITF에 따르면 전체 상선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고 전했다.

협약이 적용되는 선박조차 생활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칸 선장은 “식수난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전쟁 전 1톤당 2달러 수준이던 식수가 지금은 50달러로 25배 뛰었다. 선원들은 물을 배급받아 쓰고 있고, 일부 선박에선 식량마저 바닥나고 있다.

임금을 주지 않고 선원들을 배에 방치하는 고용주가 늘고 있지만, 선원들이 일을 그만두고 페르시아만을 벗어나는 것도 어렵다. 대부분 계약직이라 한 차례 항해를 중도 포기하면 다음 계약을 따내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방글라데시 선원노조의 아남 차우두리 위원장은 “지도자들에게 부탁한다. 다음에 전쟁을 계획할 때는 선원들이 빠져나갈 시간을 달라. 당신들의 무의미한 행동에 선원들이 희생되지 않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아시아 각국 정부는 자국민 보호에 나서고 있다. 인구 대비 가장 많은 선원들을 송출하는 필리핀이 대표적이다. 59만명에 달하는 필리핀 선원들은 연간 70억달러(약 10조 4000억원) 넘게 본국에 송금한다. 전체 송금액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과거 ‘앙클라’(닻이라는 뜻)라는 선원 정당까지 있었던 만큼, 필리핀 정부는 자국 선원들이 페르시아만 배치를 거부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인도 정부도 자국 선원 송환 작업을 적극 알리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전쟁 이전부터 자격을 갖춘 선원이 수요에 비해 부족했다”며 “선원들의 삶을 개선하는 것은 모든 국가의 이해가 걸린 문제”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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