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 필요성을 열어두면서도 농어민과의 협의에 시간을 두겠다는 취지다. 다만 신청 보류가 장기화하면 추가 시장 개방과 역내 공급망 혜택을 확보하는 시점도 늦어질 수 있다. 농어업 피해를 줄일 보완책과 함께 수출·제조업의 통상 실익을 어떻게 확보할지가 과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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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 청와대 수석대변인은 8일 서면 브리핑에서 이 대통령이 CPTPP 가입을 연내 신청하지 않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관련 부처에는 시한을 정해놓기보다 진정성을 갖고 농어민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고 지속적으로 대화할 것을 당부했다.
지난 6일 국무회의에서는 CPTPP 가입과 관련한 보고와 토의가 이뤄졌다. 이 자리에서는 올해 11월 열리는 CPTPP 장관회의에서 한국의 가입 문제가 논의되려면 늦어도 10월 중순 관보에 공청회 개최 계획을 공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이 대통령은 이 같은 일정에 맞춰 절차를 진행하기보다 국내 공감대를 먼저 확보하도록 했다. 가입 신청 시점을 정하고 농어민을 설득하기보다 충분한 대화를 거쳐 추진 방향을 정하라는 주문으로 읽힌다.
강 수석대변인은 “통상정책은 국민의 삶과 직결된다”며 “특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어민들과의 신뢰와 공감대를 바탕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CPTPP 가입은 제조업 전반의 생산 확대 효과가 예상되지만, 농림수산업에는 생산 감소 부담을 줄 수 있다. 산업통상부가 지난달 28일 공개한 CPTPP 가입 영향분석 잠정치에 따르면 협정 발효 후 15년간 농림수산업 국내생산은 연평균 약 8500억원 감소할 것으로 추정됐다. 개방의 이익이 경제 전반에 돌아가더라도 부담은 특정 산업과 지역에 집중될 수 있다는 의미다.
정부가 신청 보류와 함께 농어촌상생협력기금 확충을 제시한 것도 이런 우려와 맞닿아 있다. 정부는 2015년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 당시 약속한 기금 1조원 가운데 부족한 7000억원을 재정으로 확보할 예정이다.
새로운 개방에 대한 동의를 구하기 전에 기존 지원 약속부터 이행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강 수석대변인은 “무엇보다 정부와 농어민 사이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멕시코 시장·공급망 실익…양자협정도 별도 추진
다만 CPTPP 가입에 따른 제조업의 기대 이익도 적지 않다는 점이다. 청와대는 CPTPP를 “글로벌 통상국가를 지향하는 대한민국이 중요하게 검토해야 할 선택지”라고 밝혔다. 같은 정부 분석은 CPTPP 가입으로 협정 발효 10년 후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0.38%포인트 증가하고, 발효 후 15년간 제조업 국내생산은 연평균 6조3000억∼6조7000억원 늘어날 것으로 추정했다. 농어업의 부담과 제조업의 성장 효과가 함께 예상되는 사안이다.
특히 멕시코는 CPTPP 가입을 통한 신규 시장 개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국가다. 한국은 CPTPP 기존 12개 회원국 가운데 멕시코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와 양자 또는 다자 FTA로 연결돼 있다. 일본과도 별도의 양자 FTA는 없지만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발효돼 있다.
다만 CPTPP만이 멕시코 시장 접근을 확대할 경로는 아니다. 한·멕시코는 지난달 정상회담을 계기로 경제 및 산업·자원 협력 이니셔티브를 체결하고 공동이익연구에 착수해 향후 무역협정 개시를 준비하기로 했다. CPTPP와 별도로 양자 협정을 통한 시장 개방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아직 협정 준비 단계여서 이를 CPTPP의 실익을 대신할 확정적인 대안으로 보기는 어렵다. 양자 협정으로 멕시코 시장 접근을 개선하더라도 CPTPP 회원국 전체를 대상으로 한 원산지 누적 혜택까지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CPTPP는 회원국산 원산지 재료를 다른 회원국의 생산에 사용하면 역내산으로 인정하는 원산지 누적 규정을 두고 있다. 여러 회원국에 걸쳐 부품 조달과 가공이 이뤄져도 관련 요건을 충족하면 최종 제품이 특혜관세를 받을 수 있는 구조다. 한국이 가입하면 기업들이 역내 생산망에서 이를 활용할 여지가 확대된다.
다만 미가입국의 재료를 사용했다고 관세 혜택이 무조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비회원국산 재료가 포함돼도 품목별 원산지 기준을 충족하면 특혜관세를 받을 수 있어 실제 영향은 제품과 공급망별로 달라진다.
북미 시장 진출 효과는 별도로 따져야 한다. CPTPP 가입으로 한국과 멕시코 간 교역 조건이 개선되더라도, 멕시코에서 생산한 제품을 미국에 수출할 때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의 특혜관세를 받으려면 해당 협정의 원산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진행 중인 USMCA 재검토는 이와 관련한 불확실성을 키우는 변수다. 미국은 지난 7월 공동 재검토에서 현행 협정의 연장에 동의하지 않았고, 협정이 계속 유효한 가운데 원산지 규정과 자동차·철강 등을 둘러싼 후속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이는 한국 기업의 멕시코 생산·조달 전략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제조업 내부의 이해득실도 엇갈린다. 지난 2일 산업부 간담회에서 반도체·배터리·디스플레이 등 전기전자 분야 협단체들은 멕시코와의 신규 FTA 효과와 시험·인증 부담 완화 등에 기대를 나타냈지만, 일부 품목의 대일본 시장 개방 확대에는 우려를 제기했다. 농어업뿐 아니라 제조업도 업종별 영향을 따져야 하는 셈이다.
연내 신청 보류 자체가 새로운 관세나 제재를 발생시키는 것은 아니다. 정부의 경제효과 추정치도 가입 이후의 예상 효과이지 이번 유예에 따른 손실액은 아니다. 가입에는 기존 회원국의 합의와 협상이 필요한 만큼 신청 지연이 실제 발효 시점을 얼마나 늦출지도 별도로 살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