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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인]안건명 지우는 이사회…주주 알 권리 짓밟는 ‘깜깜이 공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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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엄 기자I 2026.09.03 18: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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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법인·은행업무 등 뭉뚱그려 표기
대표적 사례로 효성·HS효성 거론
구체적 사업 내역 ‘실종’ 한화·SK 등과 대비
밸류업 기조 속 주주 알 권리 역행 지적

이 기사는 2026년09월03일 15시16분에 마켓인 프리미엄 콘텐츠로 선공개 되었습니다.


[이데일리 마켓in 이건엄 기자] 국내 상장사들이 이사회 및 산하 위원회에서 의결한 안건 내역을 보다 투명하게 공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단순히 ‘해외법인업무’나 ‘은행업무’ 등 대략적인 분류에 그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계약명과 거래 대상 등 핵심 정보를 상세히 공개해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 현황을 주주들이 정확히 파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정부의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추진으로 주주 권리 강화 기조가 확산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이 같은 두루뭉술한 공시는 투자자에게 다소 불친절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여의도 증권가 전경.(사진=연합뉴스)
여의도 증권가 전경.(사진=연합뉴스)


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일부 상장사들은 신속한 의사결정을 위해 사내이사 중심으로 운영되는 경영위원회 등에서 처리한 안건에 대해 자세한 기술을 피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안건이 통과됐다는 사실만 알릴뿐 구체적인 사안은 표기하지 않는 식이다. 해당 결정이 어떤 자금 흐름이나 사업적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선 구체적인 내역을 밝히지 않는 경우가 잦다.

대표적으로 효성그룹과 최근 계열분리해 출범한 HS효성그룹 주요 계열사들의 사례가 있다. 효성(004800)은 정기보고서 내 경영위원회 활동 내역을 공시하면서 안건의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게 기재하고 있다.

실제 효성의 올해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상반기 중 개최된 경영위원회 의결 안건 대다수가 ‘해외법인업무 관련 건’, ‘은행업무 관련 건’, ‘회사업무 관련 건’ 등으로만 명시돼 있다. 상반기에만 ‘해외법인업무 관련 건’이 10여 차례 반복 기재됐다.

대상 법인이 어디인지 의결 내용이 자금 대여인지 지급보증 연장인지 등 세부적인 정보는 전혀 제공되지 않았다. 주요 계열사들과 계열분리된 HS효성(487570) 역시 안건을 유사한 형태로 뭉뚱그려 공시하며 기존의 낡은 관행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이처럼 기업들이 안건의 구체적인 명칭이나 대상을 가리는 것은 부실 해외 종속회사에 대한 자원 투입 등 민감한 내부 의사결정이 외부에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수시공시 의무 기준에 못 미치는 자금대여·채무보증 건이나 기존 계약의 단순 연장 건이다. 이런 거래는 경영위원회 의결을 거치고도 정기보고서의 뭉뚱그려진 안건명 외에는 별다른 공시 창구가 없다.

효성처럼 문턱 아래 건이 반복되면 개별 거래는 크지 않아도 누적 익스포저는 상당한 규모로 불어날 수 있다. 사외이사의 견제가 미치지 않는 사내이사 중심의 위원회에서 이런 결정이 반복될 경우 투자자들은 리스크를 면밀히 파악할 수 없어 투자 판단에 심각한 제한이 따른다.

이는 주주와의 소통을 강화하고 공시의 질을 높여가는 주요 대기업들의 투명한 공시 행보와도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한화(000880), SK(034730), 두산(000150) 등은 구체적인 사업명과 목적물을 낱낱이 밝히며 시장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한화오션(042660)은 반기보고서 이사회 의결사항에 ‘신안우이해상풍력 발전사업 주식근질권 설정 계약의 건’, ‘LNGC ALS Air Compressor 구매 계약의 건’ 등 구체적인 프로젝트와 구매 부품명까지 상세하게 기재했다.

SK이노베이션(096770) 역시 ‘AI Investment 출자 약정’, ‘베트남 뀐랍 LNG 발전사업 추진’ 등 투자 대상과 지역을 명확히 공시해 주주들의 이해도를 높였다. 두산에너빌리티(034020) 또한 ‘테스나 반도체 테스트 공장 신축공사 참여’ 등 참여 사업의 실체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주주 권리 보호와 거버넌스 투명성이 자본시장의 최우선 과제로 떠오른 상황에서 안건을 뭉뚱그리는 관행은 주주 친화 정책에 정면으로 역행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투자자들이 재무제표 주석에 숨겨진 우발부채나 특수관계자 거래 내역을 일일이 찾아 역추적해야 하는 등 비효율이 발생한다는 지적이 일각에서 나오는 이유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정기보고서의 위원회 활동 내역은 이사회 감시 기능이 실제로 작동하는지 보여주는 최소한의 장치”라며 “안건명조차 확인할 수 없다면 주주는 무엇을 감시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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