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정부 고시 규정 등을 기준으로 보호 대상 기술을 엄격하게 판단하기 때문이다. 고시에 포함되지 않은 기술은 보호받지 못한 채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 고시에 포함된 기술이라도 재판부가 이를 첨단 기술로 보지 않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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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이데일리가 분석한 SK하이닉스 이미지센서(CIS) 기술 유출 사건과 삼성전자 D램 공정 기술 유출 사건 판결문에 따르면 고시에 포함됐더라도 공정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면 법원은 유출 행위를 무죄라고 판단했다. 업계에서는 이미 첨단 핵심기술로 판단되는 기술도 고시에 포함되는 기술로 볼 수 없다며 무죄 판단을 내렸다.
현행법에 따라 산업기술 유출 범죄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유출된 기술이 국가 안보과 국민 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첨단기술 또는 국가핵심기술이거나 영업비밀에 해당해야 한다. 첨단기술, 국가핵심기술 지정 및 해제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정기적으로 심사해 고시한다. 위원회 심사부터 고시까지는 약 반년 가량 소요된다.
SK하이닉스 전 직원 A씨는 지난달 13일 산업기술보호법,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혐의 등이 인정돼 징역 1년 6개월을 확정 받았다. 중국 현지법인에서 CIS 공정 관련 고객지원(CS)을 맡았던 그는 2022년 화웨이 자회사 하이실리콘으로 이직을 준비하며 영업비밀 자료 186장을 출력하고 사진 5900장을 촬영해 반출했다. 자료는 이력서 작성과 입사지원에 쓰였다. 자료 일부를 넘기고도 정작 취업에 실패한 그는 또 다른 중국 기업에 지원하면서 또 다시 이를 활용했다.
1심 재판부는 “기술 정보가 해외 경쟁업체로 유출되는 것을 가볍게 다룰 경우 기업들의 손해가 막심하고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져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면서도, 해당 정보가 CIS 제조로 직결되는 수준은 아니라는 점을 양형에 반영했다. 특히 유출된 자료 중 ‘하이브리드 본딩’ 기술에 대해서 산업부는 ‘첨단기술에 해당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법원은 ‘근거가 부족하다’며 해당 기술 유출 행위를 무죄로 판단했다. 자료 반출 행위 자체는 비난 가능성이 높지만, 해당 기술이 고시에서 정하는 보호 대상인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
하이브리드 본딩 기술은 반도체 칩을 붙일 때 ‘범프’를 없애고, 칩의 표면끼리 직접 연결하는 기술으로,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에 적용될 핵심기술이다. 업계에서는 HBM 16단 이상 고적층 시대를 겨냥한 차세대 핵심 패키징 기술로 꼽힌다.
업계 “고시 전까지 공백 줄이는 방안 고민도”
삼성전자 사건도 마찬가지다. 삼성에서 21년간 근무한 B씨는 2016년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로 옮겨 D램 개발을 총괄했다. 입사 한 달 만에 17~18나노 ‘D램 개발 프로젝트’를 세우고 삼성의 반도체 8대 공정 출신 엔지니어들을 영입했다. 이들은 공정정보를 노트에 옮겨 적어 반출하는 수법을 썼다. 여기에는 615개 공정의 순서와 장비 모델명, 삼성전자가 물질을 숨기기 위해 임의로 사용한 물질 명칭까지 포함됐다.
산업기술보호법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B씨는 징역 6년 4개월·벌금 2억원 확정받았다. D램 기술 유출은 여러 피고인이 연루됐는데, 또 다른 핵심연구원 C씨는 1심에서 징역 7년을 받았다.
다만 B씨의 1심 재판부도 유출 자료 중 원자층증착(ALD) 장비 관련 기술정보는 산업기술보호법상 ‘첨단기술’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이 부분은 무죄로 판단했다. 더욱이 산업부 고시에 ALD 장비 기술이 이미 첨단기술로 지정돼 있었지만, 장비를 구성하는 모든 부품·도면까지 보호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그 기술 및 제품을 구현하는데 필요한 모든 기술이 첨단기술에 해당한다고 볼 경우, 처벌 범위가 무한대로 넓어질 수 있다”고 했다.
법원이 이처럼 엄격하게 보호 기술 대상 여부를 따지는 것은 ‘법률로서 범죄라고 정한 것에 대해서만 처벌할 수 있다’는 죄형법정주의 때문이다. 문제는 법원이 정부기관에 추가적인 설명 요청을 한 적도 없단 점이다. 전문가들은 이 경우 첨단 기술을 개별 재판부의 해석에 의존하게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보호 기술 여부를 놓고 법정에서 다툼이 반복될 수도 있다.
업계에서는 빠르게 변하는 기술이 법적 보호 대상으로 신속하게 법망에 반영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규복 인하대 특임교수(전 반도체공학회장)은 “핵심 첨단기술은 관계부처와 업계 의견을 토대로 산업기술보호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정기적으로 선정된다”며 “다만 위원회에서 의결돼도 이 기술이 실제 고시되기 전까지는 시차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 사이 법률 공백을 막고 신규 기술이 보호받을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