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 금융기관으로 도약할 우리금융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11월14일 이 원장)
‘라임 사태’로 금융위원회로부터 중징계 처분을 받은 손태승 우리금융지주(316140) 회장을 겨냥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발언 강도가 갈수록 세지면서 금융권은 그의 입에 주목하고 있다. 금융그룹 내부통제 시스템, 불완전판매 등의 문제를 앞세워 사실상 손 회장 연임을 반대하는 정부 입장이 이 원장 입을 통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
금융위의 중징계 의결 직후인 지난 10일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으로 생각한다”며 손 회장을 압박한 이 원장이 이번엔 ‘조직 발전’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손 회장의 결단을 재차 요구했다. 그는 14일 금융그룹 이사회 의장단과의 간담회 후 기자들의 관련 질문에 “우리금융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연임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금감원 압박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9년에도 시중은행장 연임 이슈가 생기자, 금감원이 이사진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반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주체는 금감원이었으나 사실상 금감원장의 뜻이었다. ‘금융 검찰’ 금감원이 나섰으나 금융회사는 ‘주주들의 뜻’이라는 이유로 CEO 선임을 강행했다. 오히려 민간 금융회사 CEO 선임에 당국이 필요 이상으로 나선다는 반대 기류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결이 다르다고 금융권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제재 등 연임에 반대할 근거가 부족했던 당시와 달리 이번엔 중징계가 확정됐고 중징계를 처분한 주체가 금융위라는 점, 이 원장이 내세운 압박 명분에 반대할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에서다.
금융위는 지난 9일 손태승 회장에게 중징계인 ‘문책경고’를 의결했다. 금융위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처럼 중대한 금융정책 등을 결정하는 금융위 내 최고 의결기구다. 금융위원장과 부위원장, 상임 및 비상임위원을 비롯해 당연직 위원으로 기획재정부 차관, 금감원장, 예금보험공사 사장, 한국은행 부총재가 참석한다. 금융위의 손 회장 중징계 의결은 금융당국만의 결정이라고 보기 어렵단 얘기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백혜련 국회 정무위원장도 14일 기자들과 만나 “금융위 의결을 존중한다”고 했다.
당국 관계자는 “이 원장이 발언하고 있으나 사실 총대를 맨 것으로 볼 수도 있다”며 “이 원장 메시지는 금융당국 이상의 윗선 메시지로 봐야 한다”고 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 원장 메시지는 철저히 손 회장에 국한돼 있다”며 “다른 CEO도 거론한다면 모르겠지만 현재로선 금융위 징계 결과에 따른 것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표면적으로 이 원장이 내세우는 명분에 반박할 여지가 적다고도 금융권은 입을 모은다. 이 원장은 14일 기자들과 만나 손 회장을 겨냥한 압박 수위를 높였는데, 그 근거로 ‘조직 발전’을 들었다. 그는 “(손 회장은) 최근 어려운 경제상황, 향후 선진 금융기관으로 도약할 해당 금융회사(우리금융) 등을 종합적으로 보고 (가처분신청에 나설지) 판단을 해야 한다”고 했다. 최근 우리은행의 700억원 규모 횡령 사고 발생 등 내부통제 미비 문제가 불거진 만큼 이 부분에 있어서도 반박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노성태 우리금융 이사회 의장은 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손 회장 거취와 관련해 “심사숙고하겠다”고 했다.
인사 시즌 이사회 의장들과 간담회를 연 것만으로도 금융권을 압박하는 최고의 수단이라는 분석이다. 이 원장은 바젤 은행감독위원회(BCBS)의 지배구조 관련 권고사항을 들었다. BCBS 권고에 따르면 감독당국은 은행 지배구조를 종합적으로 평가 및 감독하고, 이사회·경영진과 정기적으로 교류해야 한다. 다만 이날 간담회는 2018년 10월, 2019년 5월에 이어 세번째 열린 것이다. 이 원장은 기자들에게 “수개월 전 일정을 잡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외압 막겠다”는 이복현…백혜련 “낙하산 안돼”
이 원장은 지난 10일 기자들과 만나 “정치적 외압이든 외압은 있지 않다”고 단언했다. 이어 “혹여 향후 어떤 외압이 있다면 제가 정면으로 그에 맞서겠다”고 했다.
이 원장 발언에 대한 평가는 이르면 연내 이뤄질 전망이다. 손병환 농협금융지주 회장 임기가 다음달 만료되고, BNK금융지주는 중도 사퇴한 김지완 회장 후임 인선 절차에 나섰다. 손태승 회장 임기도 내년 3월 만료된다. 이들 후임자를 놓고 금융 관료 출신의 ‘OB’(올드보이·금융관료 퇴직자)들이 거론되는 상황이다. 백혜련 정무위원장은 “손태승 회장에 대한 금융위 의결이 낙하산 인사의 사전 조치가 돼선 안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