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열린다'는 北美고위급회담, '비핵화 명운' 가른다

이준기 기자I 2018.11.15 15:51:46

비핵화 검증·제재 완화 놓고..물밑 기싸움 치열한 듯
중간선거 후 내부반발 극심.."민주당 눈치까지 봐야"
판 깨지면 北美 아닌 韓 치명타..文, 직접 움직이나

사진=AP
[뉴욕=이데일리 이준기 특파원] 지난 8일(현지시간) 뉴욕에서 예정됐다가 돌연 연기된 마이크 폼페이오(사진 오른쪽) 미국 국무장관과 김영철(왼쪽) 북한 노동당 대남담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 간 북·미 고위급 회담과 관련, 한·미 양국에선 “조만간 열릴 것”이라는 목소리가 잇따라 쏟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회담 확정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북·미 간 ‘비핵화와 그에 따른 상응조치’를 두고 빅딜 담판을 벌여야 하는 상황에서 만만찮은 물밑 기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야당인 민주당의 ‘하원 탈환’으로 귀결된 미국 11·6 중간선거 이후 워싱턴 정가의 ‘내부 눈치’까지 봐야 하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움직임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여기에 내년 초로 예상되는 제2차 북·미 정상회담과도 자연스레 연동할 수밖에 없는 만큼, 향후 북·미 대화의 판도를 가를 최대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韓美 “곧 일정 잡힐 것”..막판 물밑 협상中

미국의 입장은 분명하다. ‘선(先) 비핵화·후(後) 제재완화’ 원칙을 유지하되, ‘속도 조절’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아쉬운 쪽은 북한”이라는 분석에서 나온 전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고위급 회담 일정은) 곧 잡힐 것”이라면서도 “다만, 서두를 건 없다. 지금 대북(對北) 제재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며, 핵·미사일 도발도 없다. 만족하고 있다”고 했다. 미 국무부도 “우리는 적당한 시기에 회담이 잡히길 기대한다”(헤더 나워트 대변인)고 밝힌 상태다.

최근 ‘핵·경제 병진노선’까지 운운하며 반발했지만, 북한의 대화 의지도 아직 꺾이진 않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조윤제 주미 대사는 14일 특파원 간담회에서 “북한도 대화 모멘텀을 이어가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갖고 있다”며 “때문에 곧 (회담) 일정이 잡힐 것”이라고 봤다. 김 부위원장의 최측근인 김성혜 통일전선부 통일전선책략실장이 고위급 방남(訪南)단에 갑자기 빠진 배경에도 북·미 고위급 회담과 관련이 있을 것이란 추측이 나돌았다.

문제는 미국이 생각하는 북한의 비핵화 실행 조치와 북한이 원하는 미국의 상응조치의 ‘갭’이 작지 않다는 데 있다. 비핵화 검증과 제재 완화를 놓고 첨예한 물밑 협상에서 여전히 교집합을 찾아가는 중일 것이란 게 한·미 외교가의 관측이다. 일각에선 협상 본질이 아닌 부수적인 부분에서 충돌이 벌어졌을 가능성에 주목한다.

예컨대 김 부위원장의 트럼프 대통령 예방을 놓고 양측이 샅바싸움을 벌이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폼페이오 장관의 최근 방북(訪北) 때 회동한 만큼, 트럼프 대통령도 김 부위원장의 예방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에선 미국이 여전히 다루기 어려운 대미(對美) 강경파인 김 부위원장 대신 다른 인사가 폼페이오 장관의 카운터파트로 나서길 요구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커지는 ‘트럼프 대북정책’ 불만..‘부담’

중간선거 이후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지고 있는 점은 미국으로선 부담이다. ‘북한의 미신고 미사일 기지’를 꼬집은 미국의 싱크탱크인 전략문제연구소(CSIS)의 보고서 논란이나 ‘중국의 대북제재 완화’를 지적한 미 의회 자문기구인 미ㆍ중 경제안보검토위원회(USCC)의 연례보고서 파문이 대표적이다. 이를 계기로 북한 비핵화 회의론자들은 벌떼같이 트럼프의 대북정책을 융단폭격하고 있다. 반(反) 트럼프 매체들의 공세도 더욱 거세졌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사설에서 북·미 고위급 회담 취소와 북한의 핵무기 개발, 병진노선 부활 위협, 대북제재를 둘러싼 북·미 간 공방 등을 거론하며 “사실상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고 비판했다. 워싱턴포스트(WP)도 사설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겨냥해 ‘교활한 협상가’라며 “북한이 최근 미사일이나 핵실험을 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활동을 게을리했던 것도 아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의 관여 의지도 높아지고 있다. 뉴욕한인회에 따르면 미 하원 차기 외교위원장으로 유력한 민주당 소속 엘리엇 엥겔(뉴욕) 연방하원의원은 지난 1일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북·미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트럼프 행정부와 하원 외교위원회 간 상당한 접촉이 부족하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며 “북·미 협상 상황에 대해 민감한 기밀 사안까지 포함해 정기적으로 (하원에) 보고하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보고 당사자로 북·미 협상을 총괄하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스티브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를 지목했다. 한 외교소식통은 “트럼프 행정부로선 시어머니(미 의회)의 눈치까지 봐야 하는 상황에 몰린 셈”이라고 분석했다. 다른 소식통은 “만약 양측 간 협상의 판이 깨질 경우 가장 치명상을 입는 쪽은 북·미가 아닌 한국의 문재인 정부”라며 “이 경우 문 대통령은 제4차 남북정상회담, 한·미 정상회담 등을 통해 직접 움직일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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