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아의 3차 제시안은 앞선 2차 제시안보다 한층 높아졌다. 기본급은 2차 제시안보다 3000원 추가됐고 성과금도 50%와 50만원이 각각 늘었다. 사측이 교섭이 진행될수록 제시안을 상향하면서 노조를 협상 테이블에 붙잡아두는 전략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기아 노조는 3차 제시안에도 최종 합의에는 이르지 않았지만, 현대차처럼 교섭 자체가 장기간 중단된 상황과는 결이 다르다.
반면 현대차 노사는 협상 자체가 사실상 막혀 있다. 현대차 노사는 지난 18일 울산공장에서 제16차 본교섭을 진행했지만 합의에 실패했다. 지난달 8일 제15차 교섭 이후 41일 만에 다시 마주 앉았지만 상여금 인상과 정년 연장, 해고자 복직 등 핵심 쟁점에서 입장 차를 좁히지 못했다.
현대차 노조는 결국 19일부터 다시 파업에 들어갔다. 19~20일과 24~25일에는 4시간 부분파업을 진행하고 21일에는 8시간 전면파업을 벌인다. 현대차 노조가 전면파업에 나서는 것은 2016년 이후 10년 만이다.
현대차 노사의 갈등은 임금 인상 폭만의 문제가 아니다. 노조는 기본급 인상과 성과급 확대 외에도 상여금 인상, 정년 연장, 해고 조합원 복직, AI·로봇 도입에 따른 고용 보장 등 굵직한 요구사항을 내놓고 있다. 특히 정년 연장과 해고자 복직 등은 회사가 단순한 임금·복지 문제와는 다른 사안으로 보고 있어 양측의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생산 차질 규모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현대차는 기존 부분파업으로 이미 약 4만대의 생산 차질을 빚은 것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19일부터 25일까지 예정된 추가 파업으로 약 2만2000대의 생산이 더 줄어들 경우 누적 생산 차질은 6만2000대, 추정 대당 판매 단가 4265만원을 반영해 산출한 매출 감소 규모는 총 2조6000억원으로 예상된다.
현대차와 기아의 노사협상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바로 이 생산 차질을 둘러싼 온도차다. 현대차가 파업으로 생산라인을 세우며 사측을 압박하는 사이 기아는 생산을 유지하면서 사측의 추가 제시안을 끌어내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기아가 파업권을 확보하고도 생산 중단보다 교섭에 무게를 두고 있는 이유다.
실적과 생산 환경도 두 회사의 다른 선택을 뒷받침한다. 기아는 올해 상반기 역대 최대 수준의 판매를 기록했고 현대차보다 글로벌 공장 전체 가동률도 10%포인트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현대차와 기아 노조 간 미묘한 갈등도 표면화하고 있다. 현대차지부가 파업을 통해 교섭력을 높이는 상황에서 기아지부가 생산을 계속할 경우 그룹 차원의 공동투쟁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현장에서는 현대차지부의 파업투쟁과 기아지부의 풀 생산 특근을 비교하며 기아 노조에 공동투쟁 동참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특히 기아가 19일 3차 제시안까지 기본급 9만8000원, 성과금 400%+1200만원, 자사주 45주를 제시하면서 현대차와의 임금협상 격차는 더욱 선명해졌다. 기아는 이미 첫 제시안부터 현대차가 앞서 제시한 임금안을 웃돈 데 이어 추가 제시를 반복하고 있다.
이 때문에 올해는 ‘현대차 선타결, 기아 후타결’이라는 기존 공식이 깨질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기아가 파업 없이 교섭을 이어가 먼저 잠정합의에 도달할 경우 현대차그룹 노사관계에서 기아가 오히려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다만 양 노조가 공동투쟁에서 완전히 갈라진 것은 아니다. 금속노조는 20~21일 자동차 업종 공동파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현대차와 기아를 비롯해 부품사와 현대차그룹 계열사 노조가 참여할 예정이다. 기아 노조 역시 공동투쟁의 틀에서는 현대차지부와 보조를 맞추려는 모습이지만, 실질적인 대응에서는 부분 파업 대신 특근 취소 정도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