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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 부실은 단순한 교통 문제를 넘어섰다. 파트리크 슈니더 교통장관은 지난 3월 “국민이 국가의 기본 서비스 제공 능력에 대한 믿음을 잃으면 민주주의마저 흔들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4년째 경기 침체에 빠진 데다 유권자 3분의 1이 좌우 포퓰리즘 정당을 지지하는 상황에서, 부실 철도는 ‘나라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불만의 상징이 됐다는 설명이다.
독일은 지난해 균형재정 의무를 수정하며 국방비 차입 한도 제한을 사실상 해제했으며, 이와 동시에 인프라·기후 분야에도 12년간 5000억유로(약 891조원) 특별기금을 마련했다. 수십년 긴축 기조에서 벗어난 결정으로, 한 정부 자문 경제학자는 “이제 돈은 더 이상 가장 큰 제약이 아니다. 진짜 과제는 사업을 얼마나 빨리 진행하느냐”라고 강조했다. 실제 출발은 더뎠다. 지난해 추가 인프라 투자로 책정된 370억유로(약 66조원) 가운데 실제 집행은 240억유로(약 43조원)에 그쳤다. 그중 철도는 예산을 거의 소진해 가장 앞서간 분야로 꼽혔다.
넉넉한 자금이 제공되면서 공사 방식부터 과감해졌다. 과거엔 노선을 열어둔 채 조금씩 보수했지만, 이제는 노선을 몇 달간 통째로 닫고 바닥부터 새로 까는 ‘폐쇄 후 재건’ 방식을 택했다. ‘매머드’라 불리는 대형 궤도 교체 장비는 한 교대조에 2㎞씩, 기존 방식의 4배 속도로 선로를 갈아치우는 식이다. 도이체반은 이미 이런 방식으로 노선 2개를 재건했고 3개가 공사 중이며, 2036년까지 35개를 더 손볼 계획이다.
이에 따라 쾰른과 루르 공업지대를 잇는 핵심 노선은 2~7월 폐쇄돼 통근자 5만5000명이 대체 버스에 의존하고 있고, 함부르크~베를린 노선도 지난해 8월부터 막혔다. 독일 정부는 “이용객에겐 힘든 시기지만, 끝나면 훨씬 나아질 것”이라며 불편과 불만을 호소하는 국민들을 달랬다.
독일 철도의 부실은 2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독일 정부는 도이체반 증시 상장을 추진하며 수익성을 높이려 유지·보수를 줄였고, 2009년 헌법에 새긴 ‘부채 제동’으로 미래 투자가 복지 지출에 밀렸다. 현재 철도 자산의 16%가 ‘불량’ 등급으로 긴급 교체가 필요하며, 전체 지연의 80%가 노후 인프라 탓이다. 2022년에는 노후 침목이 부른 탈선 사고로 5명이 숨지기도 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정부는 출범 몇 달 만에 도이체반 최고경영자(CEO)를 교체했다. 새 CEO 에벨린 팔라는 관료주의를 걷어내고 조직을 군살 없이 바꾸겠다며 “유럽 최고의 철도회사가 되는 것 말고는 목표가 없다”고 했다. 다만 정시 도착률 목표는 70%로 낮추고, 달성 시점도 2029년으로 2년 미뤘다.
장거리 시장의 94%를 쥔 도이체반의 아성에도 균열이 예상된다. 플릭스와 이탈리아 이탈로 등 경쟁사가 2028년을 겨냥해 각각 수십억유로 규모의 고속열차 투자에 나섰다. 경쟁은 이용객에게 호재가 될 수 있다. 이탈로가 2012년 이탈리아 국영 철도와 경쟁을 시작한 뒤 5년간 평균 요금은 41% 내리고 승객은 두 배로 늘었다.
당장은 불편해도 중기 전망은 밝다는 평가가 많다. 지난해 독일 철도망은 수년 만에 처음으로 상태가 더 나빠지지 않았고, 도이체반은 2024년 이후 올해 말까지 900㎞의 선로를 새로 깐다. 투자가 풀리면서 철도 건설업계도 들썩이고 있다. 건설사 스피츠케는 지난해 매출이 19% 늘어난 6억8800만유로(약 1조2000억원)를 기록했고, 정부의 장기 투자 약속을 믿고 중장비에 대거 투자했다.
다만 필리프 나글 도이체반 인프라 담당 CEO는 “2025~2029년 1070억유로(약 191조원)가 배정됐지만, 그간의 투자 부족을 메우려면 1300억유로(약 232조원)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