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가 향후 회생절차에서 ABSTB를 상거래 채권으로 인정해 전액 변제하겠다고 밝혔지만, 금융당국과 법조계 모두 이 발언을 불신하고 있다. 투자자들은 ABSTB 상품의 정확한 구조와 투자위험을 고지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하며 법원에 상거래 채권으로 인정해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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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플러스 물품구매 전단채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28일 서초동 서울회생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원에 제출할 탄원서 내용을 공개했다.
이들은 카드회사가 홈플러스에 대해 보유한 매출채권을 기초자산으로 발행된 ABSTB에 투자한 사람들이다. 이날 기자회견에 30여명이 모였으며, 1인당 투자금액은 최소 1억원이다.
현대카드, 롯데카드, 신한카드 등 카드회사들은 홈플러스에 대해 4816억원 규모 카드대금 채권을 갖고 있다. 특수목적회사(SPC) 에스와이플러스제일차는 카드회사와 참가계약을 맺고, 이 카드대금 채권 중 일부를 받을 권리를 기초자산으로 ABSTB를 발행했다.
이 유동화거래의 주관회사는 신영증권이다. 해당 ABSTB 제76-1회는 지난 5일 만기였다.
ABSTB 투자자들이 투자금을 돌려받으려면 이를 발행한 SPC가 상환을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카드회사가 SPC에 카드대금을 줘야 하고, 그러려면 홈플러스가 결제일에 카드회사에 대금을 지급해야 하는 구조다.
그런데 홈플러스는 이 ABSTB의 실질적 상환재원인 카드이용대금을 결제일인 지난 5일 미지급했다. 그 결과 ABSTB도 만기일인 지난 5일 상환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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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플러스의 기업회생 절차 개시결정 등을 고려할 때, 추후 제77-1회 또는 제87-1회 ABSTB가 적기에 상환될 가능성이 낮다는 점에서 발행사인 에스와이플러스제일차는 실질적 채무불이행 상태로 판단된다.
이에 따라 나이스(NICE)신용평가는 에스와이플러스제일차가 발행한 ABSTB의 신용등급을 지난 6일 기존 C에서 D로 강등했다.
투자자들은 이날 법원에 제출한 탄원서에서 이 ABSTB의 정확한 구조와 투자위험을 고지받은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탄원서에서 “참가계약이 무엇인지, 이 상품이 어떤 구조로 설계됐는지에 대한 정확한 설명을 들은 적이 없다”며 “피해가 발생한 후에야 홈플러스, MBK, 카드사, 증권사가 3개월마다 돌려막기를 반복하는 구조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참가권만 가지고 있어서 회생절차에서 채권자가 될 수도 없다고 한다”며 “이처럼 위험한 구조를 미리 알았다면 그 누구도 자신의 소중한 돈을 투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MBK와 홈플러스는 홈플러스의 재정 상태가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었음에도 전단채 발행을 멈추지 않았다”며 “홈플러스 내부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MBK를 비롯한 경영진들은 투자자들에게 위험 상황을 알리지 않은 채, 회생신청 직전까지 전단채를 계속 발행해서 돈을 끌어모았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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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플러스는 향후 회생절차에서 4618억원 규모 ABSTB를 상거래 채권으로 인정해 “전액 변제하겠다”고 지난 21일 발표했다. 하지만 이 발언을 금융당국 측도, 법조계에서도 신뢰하지 않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26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서 홈플러스 대주주인 MBK에 대한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이 원장은 “ABSTB 발행액이 4000억원 규모인데 원금보장을 한다고 하지만 빠른 시일 내 변제할 유동성이 있었으면 회생신청을 안 했을 것”이라며 “MBK가 ABSTB를 언제 변제할지, 그 재원을 무엇으로 할지에 대해 발언할 수 없으면 그 앞에 여러가지를 숨기고 얘기한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거짓말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법조계에서도 SPC가 홈플러스에 대해 보유한 신용카드 대금채권이 회생절차에서 ‘상거래 채권’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지적했다.
장진석 법무법인 로백스 대표변호사는 기고문에서 “회생법에 ‘상거래 채권’ 정의에 대한 명시적 규정은 없다”면서도 “통상적으로 이는 채무자 회사의 영업으로 인해 채권자가 채무자 회사에 대해 갖는 채권으로, 대여금채권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어 “SPC가 보유한 신용카드 매출채권은 비록 그 원천이 상거래로 인해 발생한 것이지만, 당초부터 여신전문금융기관인 신용카드 회사가 홈플러스에 대해 갖는 신용카드 대금채권이므로 ‘상거래 채권’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또한 “금융기관이 아닌 유동화전문회사(SPC)가 이런 신용카드 매출채권을 갖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서 이를 ‘상거래 채권’으로 볼 여지가 있는지를 살펴보면, 이와 관련해 참고할 수 있는 법 조항은 기업구조조정 촉진법(구촉법)”이라고 덧붙였다.
기업구조조정 촉진법 시행령 제2조 제1항 제5호를 보면 ‘채권금융기관’ 범주에는 ‘자산유동화에 관한 법률에 따른 유동화전문회사’도 포함된다. 이를 감안하면, SPC가 보유한 신용카드 대금채권(이하 SPC 회생채권) 역시 ‘상거래 채권’보다는 ‘금융채권’에 더 가깝다는 게 장 변호사의 설명이다.
또한 중소 기업자들은 이미 물품대금을 다 결제받은 상태다. 향후 홈플러스가 영업을 계속하는 데에 SPC 회생채권의 변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기는 어렵고, 법원이 그에 대한 조기변제를 허가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분석이다.
만약 홈플러스가 향후 조달할 재원 규모가 회생채권 전부를 상환하기에 충분하다면 그런 내용의 회생계획도 법원에서 인가받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SPC 회생채권을 다른 상거래 채권들과 동일한 조건으로 우대해서 변제하는 내용의 회생계획에 대해 일반 회생채권자들이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
장 변호사는 “결국 홈플러스의 발표와는 달리 SPC 회생채권이 회생절차에서 ‘상거래 채권’으로 인정받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며 “이를 비춰보면 홈플러스 경영진 또는 MBK의 입장은 일반 소액 투자자들의 희생을 아랑곳하지 않는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의 전형”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