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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인 수메르 신화에서 인안나는 이복언니 에레쉬키갈이 다스리는 지하 세계를 방문한다. 인안나는 지하 세계의 법칙에 따라 모든 소유물을 박탈당하고 나체로 죽음을 맞이, 신들의 도움으로 부활해 지상으로 복귀한다.
김 작가의 ‘역행기’에서 ‘인안나’는 자신의 방에 머무르다가 지하로 떨어지며 주머니, 핑크, 에레쉬, 돌맹이 등 다른 존재를 만난다. 이 존재들은 ‘인안나’의 할머니, 어머니, 이복언니 등이며 이들은 지상에서 알지 못한 서로의 이야기를 지하에서 나누게 된다.
이 과정에서 한국 현대사의 그늘에 묻혀 있던 여성들의 삶이 나타난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은 ‘주머니’, 산업화 속 노동 문제를 경험한 ‘에레시’, 성별 분업화로 치열하게 살아온 ‘핑크’ 등 조명받지 못한 여성들의 상처가 드러난다. ‘인안나’가 다시 지상에 올라가기까지 이들은 상처와 회복을 경험하며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여운을 남긴다.
김 작가는 “진보적이고 훌륭한 여성 서사 작품이 많겠지만 저는 저에게서 가장 가까운 여성들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할머니와 엄마, 언니, 저의 삶을 생각했다”며 “다양한 시대를 경험한 여성들이 소통을 깊게 하지 못해 쌓인 이야기 등을 천착해 세대별 여성들의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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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 영상디자이너는 “지하로 떨어지는 내용이다보니 장소마다 어떻게 다르게 표현할지에 집중했고, 각 장소마다 특징을 주려고 했다”며 “사실적인 풍경을 보여주기보다 어떻게 흐르고 작동하는지 드러내려고 했다”고 부연했다.
박동우 무대디자이너는 “방에서 지하로 떨어져내리는 일종의 싱크홀 느낌으로 잡았다”며 “거대한 무대바닥이 떨어져내린다는 건 사실 관객의 위치에서 봤을 때 3톤에 달하는 무대바닥이 올라가야 하는 건데 그런 작업이 잘 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기대감을 더했다.
신재훈 연출은 이 작품에 대해 “가족을 기다리던 인안나가 더 넓은 개념의 가족을 만나는 이야기”로 정의했다. 신 연출은 “작품이 명작이고, 작가의 언어를 믿기 때문에 대사 하나도 고치지 않을 것”이라며 “작품이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고통이 절망일 수 있지만 새로운 힘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 관객분들이 여러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김 작가는 “어느날 아스팔트를 뚫고 나오는 풀을 보며 저 아래에도 뿌리내린 힘이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했다”며 “불평등하고 낮은 바닥에서 연결되는 힘이 있다면, 단절된 앞 세대의 힘과 연결된다고 생각해본다면 다시 지상으로 잘 올라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했다”고 강조했다.
연극 ‘역행기’는 다음 달 3일부터 13일까지 서울 중구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