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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 등에 따르면 중국 상무부와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전날 ‘2025년 국인 투자 안정 행동계획’을 발표했다. 행동계획은 외국인 투자를 안정화하기 위해 다양한 부문의 시장 접근을 확대하고 투자 촉진 노력을 강화하는 등 4개 분야에서 20가지의 조치가 포함됐다.
외국인 투자 기업이 지분을 투자할 때 중국 내 대출을 허용하고 다국적 기업의 투자 회사 설립을 장려하며 외국인 투자자가 중국 내 인수합병(M&A)을 더 쉽게 하도록 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최근 중국의 외국인 투자는 감소세다. 지난해 중국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FDI)는 전년대비 27.1% 줄었다. 올해 1월에도 FDI는 전년동월보다 13.4% 감소하며 여전히 부진하다. 이에 정부 차원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경영 환경 개선 의지를 강조하는 것이다.
외국인 투자 문제가 아니더라도 중국은 최근 들어 해외 대상으로 유화적인 정책을 이어가고 있다. 2023년말부터 유럽과 아시아 등 국가에 대해 확대하고 있는 무비자 입국이 대표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으로 갈등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아군을 최대한 확보하겠다는 외교 전략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 들어 소원한 관계를 보였던 한국과도 지속적인 관계 개선의 신호를 보내고 있다. 지난해 11월 한국에 대해 일방적인 비자 면제 방침을 발표해 여행객 증가 등 인적 교류를 독려했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7일 우원식 국회의장을 만나 환담하기도 했다.
중국이 외국인 대상 투자를 독려하고 교류를 확대하면서 자연스럽게 한한령 해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우 의장은 시 주석을 만났을 때 “중국에서 한국 관련 문화 콘텐츠를 찾기 어렵다”며 “문화 개방을 통해 청년들이 서로 소통하고 우호감정을 갖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 주석도 “문화 교류는 양국 교류에 매력적 부분”이라며 “이 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지는 일은 피해야 한다”고 화답했다.
일각에서는 올해와 내년 각각 한국과 중국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중국 내 한국 문화 콘텐츠가 허용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한령이 해제될 것이란 한 언론 보도가 나온 후 이날 국내 증시에서는 유명기획사, 드라마 제작사 등 엔터테인먼트 관련주가 급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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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면 허용 쉽지 않아, 中도 명분 있어야”
중국 현지에서는 전면적인 한한령 해제 전망에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일단 중국은 한한령이라는 용어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한국측이 영화·드라마나 가수 공연 등을 신청할 때 뚜렷한 이유를 대지 않고 불허할 뿐 한한령을 근거로 들지 않기 때문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중국과 한한령 자체를 언급하진 않고 있다”며 “전면적인 한류 콘텐츠 허용에 대한 논의가 오가진 않았다”고 전했다. 지난해 한 고위 관료가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도 민간 기업들이 “한한령 해제를 요청해달라”고 건의하자 그 문제에 대해선 논의하기가 쉽지 않다는 의견을 전했다.
결국 중국 정부 차원에서 한한령을 해제한다고 발표하기보다는 점진적인 문화 교류 확대를 도모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도 클래식 같은 전통문화 분야나 인디뮤지션 등은 중국에서 공연하는 등 소소한 교류가 이어지고 있다. 중국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체들이 한국 드라마 등의 지적재산권(IP)을 사서 직접 제작·배급하는 경우도 많다.
지난해 베이징국제영화제에서 만났던 한국의 영화제작사 대표는 “한국에서 만든 드라마 등을 곧바로 유통할 수 없지만 한류 콘텐츠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 IP를 팔라는 요청은 지속적으로 들어오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중국 내 한류 콘텐츠가 유통되더라도 모든 분야가 다 허용되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중국은 지금도 미국 등 서방의 콘텐츠에 대해 한한령만큼 강도 높은 조치를 하진 않지만 중국 내 유통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예를 들어 정치적인 요소가 들어있거나 사회 부조리에 대한 비판 등이 담긴 영화 상영은 극히 힘들다. 마블의 수퍼히어로 영화나 미니언즈 같은 애니메이션 영화 등이 극장가에 걸린다.
한국의 경우도 한한령이 해제되더라도 철저히 엔터테인먼트 요소만 지닌 콘텐츠만 제한적으로 유통될 가능성이 높다는 시각이다. 수많은 인원이 한자리에 모이는 걸 극도로 조심하는 중국 당국의 기조를 볼 때 국내 유명 아이돌의 대규모 공연에 대해서도 현재로선 성사를 가늠할 수 없다는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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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한령이 시작했던 2017년 이전과 같은 인기를 끌지도 미지수다. 중국은 미국과의 패권 경쟁, 코로나19 사태 등을 겪으며 첨단기술은 물론 문화 분야에서도 자국 콘텐츠를 적극 키우고 있다.
최근 흥행 수익만 2조위안을 돌파한 애니메이션 ‘너자2’가 대표적인 예다. 또 중국 내 유명 번화가를 다녀도 유명 해외 가수보다는 중국 가수들의 노래가 자주 들리는 것이 현재 상황이다.
우리나라가 대통령 탄핵 사태로 사실상 국정 공백 상태인데 전면적인 문화 개방을 할 ‘명분’이 없다는 점도 고민이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사실 한국 무비자도 시 주석이 한국과 정상회담 때 쓰려고 했던 카드였는데 비상계엄 등 여파로 시국이 혼란해지면서 먼저 풀어준 측면이 있다”며 “한국측으로부터 받은 것이 많지 않은데 한한령까지 해제하기엔 부담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한한령이란 용어를 쓰지 않더라도, 전면적인 문화 개방 등을 논의하려면 중국의 카운터파트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 한국은 그럴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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