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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 대상은 강도·강도예비 등 일부 혐의다. 반공법 위반 혐의에 대한 무죄 판단은 다투지 않기로 했다. 검찰은 피해자 진술이 있는 만큼 상급심의 판단을 받을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앞선 재심 결심 공판에서도 반공법 위반에 대해서는 무죄를 구형했지만, 강도·강도예비 등 나머지 혐의는 유죄로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당 혐의는 김 시인이 1979년 4월 투쟁 자금 마련을 위해 서울 강남구의 고 최원석 동아그룹 회장 자택에 들어가 금품을 빼앗으려 했다는 내용이다.
김 시인과 함께 체포됐던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2012년 당대표 경선에 출마하면서, 당시 재벌 응징과 운동자금 확보를 명분으로 동료들과 최 회장 집 담을 넘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재판부는 지난 2일 김 시인이 수사 과정에서 불법 구금과 폭행·협박 등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판단하고 모든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강도 혐의에 관한 자백 역시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불법 구금과 고문 등의 영향이 남아 있었을 가능성이 커 자백의 신빙성을 높게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남민전은 민족일보 기자 출신 이재문 씨 등이 1976년 반유신 민주화운동 등을 목적으로 만든 지하 조직이다. 서울 곳곳에서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유인물을 배포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 이후 국가보안법 위반 등을 이유로 80여 명이 검거되면서 유신 말기 최대 공안사건으로 기록됐다.
김 시인은 1978년 남민전 준비위원회에 가입하는 등 유신 반대 활동을 하다가 1979년 구속됐으며, 이듬해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수감 생활은 9년 2개월여 동안 이어졌다. 1988년 형집행정지로 풀려난 그는 5년여 뒤인 1994년 췌장암으로 별세했다.
옥중에서도 시 쓰기는 멈추지 않았다. 칫솔 끝을 뾰족하게 다듬어 우유갑과 은박지 등을 눌러가며 작품을 남겼다. 감옥에서 집필한 시 250여 편은 1984년 첫 시집 『진혼가』를 시작으로 『나의 칼 나의 피』, 『조국은 하나』 등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