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서울 용산 나인트리로카우스호텔에서 열린 ‘2025 융합형 의사과학자 양성사업’ 수료식에서 만난 진세종(35) 고려대 연구강사는 의사과학자의 길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의과학자(MD-Ph.D)는 의사 면허(MD)를 갖고 박사 학위(PhD)까지 취득한 과학자다. 의사가 임상 환자를 주로 본다면 의사과학자는 임상을 기반으로 질병을 연구하며 기초과학과 환자를 연결해주는 연결다리 역할을 한다. 이 과정에서 신약, 신 의료기술·기기 등이 개발돼 전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한국은 의과학의 불모지다. 우리나라 의대·의전원 졸업생 중 의과학자로 양성되는 경우는 1.6%로, 선진국(3%)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
실제로 세계 바이오산업을 주도하는 미국은 1960년대부터 의과학자 양성 전문과정을 운영했다. 약 120개 의과대학에서 MD와 PhD를 모두 보유한 졸업생의 83% 정도가 임상의가 아닌 의과학자로 활동한다.
우리나라는 2019년부터 보건복지부가 ‘융합형 의사과학자 양성사업’을 시작해 지난 6년간 총 68명의 의사과학자를 배출했다. 현재 72명이 학위과정을 진행 중이다. 의사과학자로 선정되면 선진의사과학자 3년, 심화의사과학자 3년, 리더의사과학자 5년 층 최대 11년까지 지원받으며 개인연구에 몰두할 수 있다. 정부는 올해만 국비 867억원을 투입해 신규 석·박사 80여명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
|
이날 만난 세 명의 의과학자 모두 ‘뇌’에 관심을 뒀다. 박정원 박사는 “임상현장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가 뇌종양 환자였다”며 “현재 뇌종양의 원인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 뇌종양의 시작을 알면 악화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열심히 재미있게 연구하는 중”이라고 소개했다.
안규식 서울대박사후 연구원은 개인 맞춤형 장기칩을 이용한 알츠하이머병의 장-신경-뇌 축 기전 연구를 진행해 SCI(E) 주저자 논문 게재와 특허 출허를 완료했다. 그는 “뇌에 이상 물질이 쌓여 알츠하이머병이 발병하는데 장에서 발생한 비정상적 단백질이 뇌로 전달되는 게 아닐까라는 가설을 입증하는 과정”이라며 “임상까지 가려면 5~10년은 더 걸릴 거 같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임상의로서 환자를 보는것도 즐거웠지만, 기초연구의 경우 가설을 세운 대로 직접 증명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을 느껴 향후 기초의학도로서 학교에 남아 연구를 지속하고자 한다”며 “임상의로서의 경험도 놓치고 싶지 않아 가능하다면 임상과 기초를 병행하고 싶다”고 말했다.
진세종 박사는 마취가 신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마취약에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고 알려졌지만, 동물실험에서는 그렇지 않은 결과가 나오고 있어서다. 그런데 그에게 가장 큰 고민은 진로다. 배출된 의사과학자들은 서울대, 미국 하버드대 등 국내·외 연구실에서 연구를 하거나,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연구를 병행, 또는 개인 창업을 통해 각자의 진로를 이어나간다. 의사과학자 박사 후 연구성장지원 대상자로 선정되면 신진의사과학자, 심화의사과학자, 리더의사과학자 과정을 거치며 억대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이후 의사과학자 글로벌 공동연구지원, 연수지원금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임상보다 연구에 매진하고 싶은 주니어급에겐 그림의 떡이다. 시니어급 의사들도 연구욕구가 높아도 진료 과부하에 연구에 몰입하기 힘든 구조여서다. 진 박사는 “저와 같은 주니어급 의사들이 임상현장으로 복귀하면 연구 시간이 줄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시니어도 주니어도 임상과 기초연구를 함께 매진할 수 있는 시스템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