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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을 모았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동생 김여정은 정치국 후보위원에서 빠졌고 당 부장 명단에도 이름이 없었다. 반면 김 위원장의 최측근인 조용원은 정치국 상무위원에 새로 진입하는 등 약진했다.
‘총비서’ 직책은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가졌던 정치적 상징이었다. 북한은 2012년 4월 북한이 김정일을 노동당의 영원한 총비서로 모시기로 결정했다. 5년 전 북한이 비서국을 폐지하고 ‘당 위원장’이라는 새로운 직책을 신설한 것 역시 총비서를 건드릴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결정을 번복하고 총비서라는 직책을 김 위원장이 달았다는 것은 ‘아버지의 이름 아래’ 통치권을 휘둘러왔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유일무이한 당 일인자로서 올라섰다는 의미를 가진다. 양무진 북한대학원 대학교 교수는 “총비서로서 회귀는 할아버지·아버지의 반열에 올랐다는 자신감과 함께 당체계의 일원화·유일영도 체계의 강화시키겠다는 전략적 의도가 담겨 있다”고 해석했다.
대남·대미 사업 총괄역을 맡은 김여정 제1부부장은 승진은커녕 정치국 후보위원 명단에서도 탈락했다. 김 부부장이 사실상 2인자로 등극했다는 정보기관과 전문가들의 예상을 크게 빗나간 결과이다.
국가정보원은 지난해 11월 국회 정보위원회 국감 당시 김 부부장에 대해 “8차 당 대회에서 위상에 걸맞은 당 직책을 부여받을 가능성도 있어 주시하고 있다”고 비공개로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이번 인사 결과만으로 김 부부장의 입지가 약화됐다고 판단하기는 이르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정대진 아주대 교수는 “직함과는 관계없이 김 부부장의 직계 실세로서의 위상은 강고하고 지난해 연말 정치국 후보위원에서 밀려난 것으로 관측됐던 강경인사 리선권 외무상도 자리를 유지했다는 점에서 대외관계는 여전히 김 위원장이 직접 결정하고 상황과 필요에 따라 인사를 활용해 펼쳐나갈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 역시 “지난해 김 부부장이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한 후 대남 군사행동 계획을 하려고 할 때, 김 위원장이 보류시키는 일이 있었다”며 “이에 대한 형식적 책임일 가능성은 있지만 여전히 백두혈통으로서의 김여정의 위상을 무시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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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적인 북한 사회의 특성상 전문가들은 북한의 권력관계를 김 위원장의 공식행사에 동행했는가, 사진에 함께 나왔는가, 얼마나 지근거리에 섰는가 등을 통해 파악한다.
11일 기준 통일부 북한정보포털의 ‘김정은 위원장 동향 분석’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김 위원장을 가장 많이 수행한 인물이 조용원이다. 그는 2017년 34회, 2018년 51회, 2019년 34회, 2020년 12회 총 131회를 수행했다. 이는 서열 2위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86회를 훌쩍 뛰어넘는 횟수다.
특히 지난해 8월 태풍 ‘바비’ 피해를 파악하기 위해 현지시찰에 나선 김 위원장 앞에서 주머니에 손을 넣고 편하게 대화를 나누는 조용원의 모습은 눈길을 끈다.
정성장 윌슨센터 연구위원·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공식서열은 5위지만, 실제로는 김 부부장과 함께 김 위원장 다음가는 영향력을 가졌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외교·대남 라인은 이번 인사에서 위상이 크게 하락했다. 미 전략을 담당하는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당 중앙위원회 위원에서 후보위원으로 강등됐다. 대남 문제를 총괄했던 김영철 당 부위원장이 당 비서에서 제외되고 장금철 대신 통일전선부장으로 이름을 올려 북한이 대남 담당 비서를 없애고 당 부장만 둔 것으로 추정된다.
리 외무상은 정치국 후보위원직은 유지됐지만 가장 나중에 호명됐다. 대중 외교를 담당해 온 김성남 당 국제부 제1부부장이 당 부장으로 임명됐지만 정치국 후보위원에 선출되지 못했다.
장 위원은 “외교·대남 엘리트들의 매우 낮은 지위를 고려할 때 김 위원장이 적어도 코로나19 위기가 해소될 때까지는 외교관계나 남북 관계보다는 내치에 집중할 것 같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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