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행이 27일 발표한 올해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속보치에 따르면 지난 7~9월 우리나라 실질 GDP는 전 분기보다 1.0% 성장했다. 한은은 3분기 성장률이 기존 전망치(0.3%)를 웃돈 것만으로도 올해 연간 성장률이 0.35%포인트가량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4분기에 성장이 멈추더라도(0%) 연간 성장률은 산술적으로 3.6%, 4분기에 1.4% 이상 성장하면 4%도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성장을 이끈 주체를 나눠 보면 정부의 비중이 두드러진다. 1.0% 성장 가운데 정부의 기여도는 0.8%포인트였고, 민간은 0.2%포인트에 그쳤다. 정부소비는 물건비와 건강보험급여비 지출이 늘면서 1.9% 증가했다. 2022년 4분기(2.3%) 이후 가장 큰 폭이다. 정부 투자도 성장률을 0.5%포인트 끌어올렸다.
이동원 한은 경제통계2국장은 “2분기에 중동 전쟁이 터지면서 정부가 상황이 장기화될 것에 대비해 상반기에 예산을 아껴둔 측면이 있다”며 “3분기 들어 대형 건설 공사나 그래픽처리장치(GPU) 도입 같은 설비투자에 지출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 건설을 늘리면 민간 건설을 밀어낼 수 있어 (상반기에는) 쉬었다가 3분기에 집행한 부분도 있다”고 덧붙였다.
산업별로는 단연 반도체가 성장을 견인했다. 반도체 제조용 기계를 중심으로 설비투자가 4.1% 늘었고, 수출도 반도체와 기계, 전기장비를 중심으로 2.3% 증가했다. 한은은 전년 동기 대비 기준으로 성장의 절반가량을 반도체가 담당한 것으로 추정했다.
실질 국내총소득(GDI)은 전기보다 3.4% 늘었고,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는 18.8% 늘었다. 전년동기대비 증가폭은 1977년 4분기(19.0%) 이후 약 49년 만에 가장 크다. 반도체 등 수출품 가격은 높은 수준을 유지한 반면 원유 등 수입품 가격은 내리면서, 같은 양을 수출해 더 많은 물건을 사들일 수 있게 된 결과다.
|
가계 씀씀이는 거꾸로 움직였다. 3분기 민간소비는 승용차, 가전제품 같은 재화와 금융, 음식 등 서비스가 모두 줄면서 전 분기보다 0.2% 감소했다. 2022년 4분기 이후 처음 감소로 돌아섰고, 감소 폭은 2022년 1분기(-1.0%) 이후 가장 컸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도 1.1% 증가에 그쳐 성장률(3.4%)이나 GDI 증가폭(18.8%)과는 괴리가 컸다.
한은은 두 가지 일시적 요인을 들었다. 7월부터 증시가 조정을 받으면서 주식 거래가 줄어 증권사 수수료 같은 금융서비스 소비가 감소했다. 또 10년 만의 완성차 업체 전면 파업으로 차량 인도가 늦어지면서 승용차 소비도 줄었다. 한은은 이 두 요인이 민간소비를 0.6%포인트 끌어내렸다고 설명했다. 이 요인들이 없었다면 민간소비는 0.4% 늘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다만 일시적 요인을 걷어내도 소비 회복세는 약하다. 이 국장은 “특이 요인이 없었다 하더라도 민간소비는 0.4% 증가로 개선세가 강하다고 말씀드리기는 어렵다”며, 높은 가계부채 부담과 인구 고령화 같은 구조적 제약을 이유로 꼽았다.
생산 측면에서도 온도 차가 뚜렷했다. 제조업은 반도체 등 컴퓨터·전자 및 광학기기를 중심으로 2.0% 성장했지만, 서비스업은 0.2% 성장에 그쳤다. 금융 및 보험업은 4.3%, 도소매 및 숙박음식업은 0.4% 감소했다.
|
가계의 체감경기도 성장 지표와 엇갈린다. 한은이 같은 날 발표한 ‘10월 소비자동향조사’에서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105.4로 전월보다 1.2포인트 하락했다. 장기평균(100)은 웃돌지만, 올해 2월 112.1까지 올랐던 데 비하면 낮은 수준이다. 중동 사태가 터진 4월 99.2로 급락한 뒤 5월 이후로는 104~106대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성장률은 고공 행진하는데 소비심리는 반년째 제자리인 셈이다.
세부 지표를 보면 가계의 불안은 일자리와 소득 쪽에서 두드러진다. 취업기회전망지수는 86으로 2포인트 떨어졌다. 한은은 반도체 경기 둔화 가능성과 인공지능(AI) 기술 발전이 고용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를 이유로 들었다. 임금수준전망지수(122)도 2포인트 내려 5월 이후 가장 낮았다. 가계수입전망지수(101)는 주가 하락과 금리 상승 등으로 1포인트 하락했다. 현재가계저축지수(93)는 2025년 5월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향후경기전망지수(88)도 높은 수출 증가세에도 불구하고 국내 증시 조정과 중동 지역 불확실성으로 2포인트 내리며 4월 이후 가장 낮았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수출이 호조이고 소득 여건도 개선됐다고 하지만 반도체에 국한된 성장이고 반도체 산업 특성상 고용유발 효과가 크지 않다 보니 전반적인 체감은 떨어지는 것”이라며 “물가는 오르고 가계부채가 높은 상황에서 금리가 오르니 실질 소득이나 소비 여력은 오히려 줄어든다”고 지적했다.
|
한은은 반도체 호황의 과실이 가계로 퍼지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기업 소득은 1분기부터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이것이 가계와 정부 소득으로 이어지려면 시차가 있다는 것이다. 반도체 기업의 성과급은 내년부터 지급되고, 늘어난 법인세 등 세수는 내년 정부 예산에 반영돼 쓰인다.
4분기부터 내년 1분기에는 민간소비가 점차 살아날 것이라는 게 한은 측 전망이다. 파업으로 줄었던 승용차 소비가 10월 들어 상당 폭 늘었고, 4분기 반도체 기업의 현금 배당과 내년 1분기 성과급 지급이 가계 소득을 늘릴 것이라는 판단이다. 내년 정부 예산에서 이전지출이 늘어나는 점도 소비를 뒷받침할 요인으로 꼽았다. 다만 금융서비스 소비는 증시 조정이 언제 일단락되느냐에 달려 있어 더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영무 NH금융연구소장은 “현 상황에서는 반도체 수출 호조가 쉽게 꺾일 것으로 보이지 않고 정부 재정도 워낙 풍부하기 때문에 내년에도 성장률 자체는 좋을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의존도 역시 높아지면서 반도체 경기와 그에 대한 우려 등에 따라 성장뿐 아니라 증시, 소비심리 등 경제 전반의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