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고(故) 이희호 여사의 5촌 조카이기도 하다. 일본 도쿄문화학원 유화과에서 수학한 유영국 화백과 1944년 혼인한 뒤 남편의 고향인 경북 울진에 터를 잡고 가정을 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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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생계는 김 여사의 몫이 됐다. 작품이 오랫동안 팔리지 않았던 남편을 대신해 택시를 구입해 운영하고, 버스 노선을 매입해 간이 운수업을 하는 등 가족의 생활을 책임졌다. 자녀 교육에도 힘써 네 남매를 모두 해외 유학을 보냈다.
장녀인 유리지 교수는 미국 템플대에서 수학한 뒤 서울대 미대 교수로 재직하며 한국 현대 금속공예 발전에 기여했다. 장남 유진씨는 유학 후 카이스트 교수로 활동했다.
뒤늦게 유 화백의 작품이 주목받기 시작했지만 그는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 이후 1977년부터 심장 박동기를 달고 생활했으며, 2002년 별세할 때까지 여러 차례 뇌출혈과 입원을 반복하면서도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김 여사는 남편의 곁을 지키며 간호와 지원을 이어갔다. 2002년 남편을, 2013년 장녀를 먼저 떠나보냈다.
유족으로는 아들 유진·유건씨와 딸 유자야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2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0일 오전 9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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