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난 국내 반도체 대기업 한 엔지니어는 인공지능(AI) 시대 들어 달라진 업계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글로벌 빅테크들이 한국 반도체 인재 확보에 나서면서 현장에서도 이직을 고민하는 분위기가 이전보다 뚜렷해졌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은 업황이 좋아 회사에 남아 있는 분위기”라면서도 “회로 설계나 패키징 등 핵심 기술 인력들 사이에서는 글로벌 기업 이직을 고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실제 AI 반도체 경쟁이 격화하면서 글로벌 빅테크들의 한국 인재 ‘러브콜’이 확 늘고 있다. 엔비디아와 애플, 퀄컴, 미디어텍 등은 최근 한국에서 고대역폭메모리(HBM) 개발 엔지니어, 3D D램 연구개발(R&D) 인력 채용에 나섰다. 많게는 4억원이 넘는 연봉을 제시하면서다.
문제는 이런 현실이 기업들만의 ‘각개전투’로 방치되고 있다는 점이다. 반도체는 국가의 안보이자 생존 전략이다. 인재가 곧 기술인 반도체 산업에서 엔지니어의 유출은 곧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전문가들이 제언하는 ‘반도체기술인공제회’(가칭) 신설, ‘국가핵심 연구개발 인력’ 지정 등은 시사하는 점이 크다. 군인, 교사 등처럼 국가에 헌신하는 기술 인력들에게 은퇴 이후까지 보장하는 장기적인 유인책을 정부가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만이 과학단지를 중심으로 정부와 대학, 기업, 연구소를 하나로 묶어 ‘인재 생태계’를 구축한 모델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있다.
글로벌 AI 경쟁은 이제 막 본격화하는 단계다. 기업은 처우 개선에 나서고 있지만, 인재 확보 경쟁을 기업의 노력에만 맡겨두기에는 한계가 있다. ‘사람이 없어 기술 경쟁력을 잃었다’는 뒤늦은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면, 인재를 지키는 일에 국가 차원의 전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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