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대행, 상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
한 권한대행은 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대다수 기업의 경영 환경과 경쟁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황에서 보다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대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국회에 재의를 요구하고자 한다”며 상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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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행은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하는 게 무엇인지 법의 문안만으론 불명확하다고 지적했다. 이는 주주는 각자 이해관계가 달라 하나의 단일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주주의 이익을 법률상 명문화하는 게 가능한지 의문이라는 학계와 재계의 그간 지적과 일맥상통하는 언급이다.
한 대행은 “기업의 경영 의사결정 전반에서 이사가 민형사상 책임과 관련한 불확실성에 직면하면서 적극적인 경영 활동을 저해할 소지가 높다”며 “이는 일반주주 보호에도 역행할 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주주들의 의견 일치가 불가능한 탓에 기업 이사회의 결정에 불만을 가진 주주들이 언제든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곧 기업의 초대형 투자, 인수합병(M&A) 등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자본시장법 ‘핀셋 규제’ 힘 받을 듯
상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이 주목받는 것은 재계의 위기의식이 전례가 없을 정도로 크기 때문이다.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제인협회 등 주요 경제단체들 외에 각 기업들도 상법 개정안이 미칠 리스크에 대해 가열차게 천명해 왔다.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SK그룹 회장)은 최근 “상법은 경제의 헌법과 비슷한데, 지금 이 타이밍에 꼭 (개정을) 해야 할까 생각이 든다”며 반대 의사를 피력했다. 재계는 이날 한 대행의 거부권 행사에 안도했다. 경제8단체는 이날 논평을 내고 “다행스럽게 평가한다”며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혁신과 투자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상법 개정과 관련해 도마에 올랐던 한화 역시 논란을 털게 됐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3조6000억원 규모의 ‘역대급’ 유상증자를 진행 중인데, 이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주가 급락을 감수하고서라도 유상증자로 조달한 자금을 경영권 승계를 위해 활용할 것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특히 상법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무리하게 자금 조달을 시도했다는 비판까지 나왔다.
이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한화 지분 11.32%를 세 아들에게 증여하기로 하는 정공법을 택했고 이날 정부의 상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까지 나오면서,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불필요한 논란을 해소할 수 있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상황이 이렇자 모든 회사를 대상으로 하는 상법 개정이 아니라 상장사만을 대상으로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 핀셋 규제가 더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이 발의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기업 합병·분할 때 주주 이익 보호 노력을 규정한 게 골자다. 또 이사회가 합병·분할의 기대효과 등을 공시해야 하는 조항을 담았다.
한 대행은 “상장사 중심으로 일반주주 보호와 기업 지배구조 개선 관행이 정착되고 관련 판례가 축적되면서 단계적으로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게 더 적합할 것”이라고 했다. 경제8단체는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한 핀셋 처방이 기업의 합병·분할 과정에서 일반주주를 보호하는데 효과적”이라고 했다. 다만 더불어민주당은 비롯한 야권이 반대하는 것은 여전히 변수다.
◇삼성·SK·현대차·LG 회장 만난 韓
한 대행은 이와 동시에 총리공관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4대 그룹 총수가 모두 참석한 가운데 경제안보전략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열어 주목받았다.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 도입을 하루 앞두고 대응책 마련을 논의하는 목적으로 열었지만, 상법 개정안 등 각종 리스크들을 함께 다뤘을 것으로 관측된다.
한 대행은 “최근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은 수출 중심의 우리 경제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며 “이제는 정부와 기업이 손잡고 한마음으로 뛰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2일(현지시간) 한국 등 무역 상대국이 미국산 제품에 부과하는 관세·비관세장벽만큼 그에 상응하는 관세율을 부과하는 상호관세를 도입할 예정이다.
한 대행은 “이번 조치(관세 부과)로 어려움에 처할 가능성이 큰 자동차 산업을 포함해 각 산업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지원 조치가 긴급하게 필요한 부분에 대해 마련하도록 하겠다”며 “기업 투자와 혁신을 저해하는 장애물을 과감히 걷어낼 것”이라고 했다. 이에 4대 그룹 총수들은 국익 확보를 위해 힘을 모으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들은 미국의 반도체법·인플레이션감축법(IRA) 보조금 축소, 관세 부과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을 위해 세제 등 적극적인 지원책을 마련해 달라고 한 대행에게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