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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줄 막혔는데 추가 담보 요구에 막막"…車업계 유동성 위기 호소

이소현 기자I 2020.04.21 19:08:46

코로나 직격탄 자동차업계-성윤모 산업부 장관 간담회
자동차업계 생산 차질·수요 감소·수출 절벽 '악재'
"유동성 지원·추가 내수 진작"…"위기 버티도록 지원"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자동차산업협회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자동차업계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자리에는 현대·기아차, 쌍용차, 르노삼성, 한국지엠 등 국내 완성차 5개사를 비롯한 부품 업체 관계자,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 등이 참석했다.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당장 4~5월에 쓸 돈이 급하다”, “추가 담보 요구하는 은행 문턱 낮춰 달라”, “4대 보험 납부라도 유예하라”, “자동차 취득세 인하해 내수라도 활성화하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미국과 유럽 등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위기에 내몰린 자동차·부품업계가 21일 서울 서초구 자동차산업협회에서 열린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간담회에서 이같이 신규 유동성 지원, 내수 진작 등을 주요 골자로 한 정부의 지원을 호소했다.

이번 간담회는 코로나19로 인한 생산 차질과 수요 감소, 수출 절벽까지 악재가 이어져 어려움을 겪는 자동차·부품업계와 정부가 현 상황을 공유하고 대응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국내 완성차 5개사와 1·2차 부품업체 대표가 참석한 간담회가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완성차업체와 부품업체 대표들은 이날 성 장관과 비공개 간담회에서 유동성 위기를 호소했다. 공영운 현대차 사장은 “현대차 매출의 75% 이상을 차지하는 수출이 어려워 유동성 위기를 해소할 지원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날 현대차그룹은 정의선 수석부회장을 포함한 임원 1200여명의 급여 20%를 반납해 긴급 유동성을 확보하는 등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자동차업계는 코로나19로 인한 수출 절벽과 해외 판매 부진은 올 하반기까지 장기화할 것으로 우려했다. 공 사장은 “해외에서 차량이 안 팔리고 재고가 남아 있는데 이런 상황은 4~5월은 유지되고 특히 유럽은 여름휴가가 한 달가량이라 적어도 8월까지 현지 판매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 사장은 간담회 후 기자들과 만나서도 “미국과 유럽이 좀 풀린다고 해도 상당 기간 수출은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카허 카젬 한국지엠 사장도 “최근 트레일블레이저를 출시해 실적을 회복하려는데 코로나19에 수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현대·기아차 해외 9개국 18개 공장 중 4개국(미국, 인도, 브라질, 멕시코) 6개 공장이 휴업 중이다. 게다가 국내 완성차 공장도 수출 비중이 높은 차종의 일부 생산라인을 휴업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달 현대차 울산5공장 2라인은 4일, 쌍용차 평택공장은 8일간 휴업했다. 또 한국 완성차 판매의 63.1%를 차지하는 유럽·북미 지역의 판매딜러가 휴업하면서 이달부터 자동차산업 전반의 생산·판매 감소가 예상된다. 산업부에 따르면 이달 1∼17일 완성차 수출은 45.8%, 생산은 19.2% 감소했다.

이같은 완성차의 위기에 해외에 동반진출 한 현대·기아차 170여개 협력업체 사업장도 정상 가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대·기아차 협력회장을 맡고 있는 오원석 코리아FT 회장은 기자들과 만나 “코로나19 여파로 자동차 부품업계의 연간 매출이 2019년 대비 30% 이상 줄 것”이라며 “현대·기아차 1차 부품 협력사가 300여곳, 2·3차 부품협력사가 5000여곳인데 이 가운데 10~20%가 자금난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면 한국 자동차 산업 전반이 흔들리게 된다”고 우려했다.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자동차산업협회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자동차업계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부품업계는 매출이 크게 줄었는데도 임금 등 상시 지출이 필요한 고정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유동성 지원책이 시급함을 강조했다. 한국GM 협력사 모임 협신회 회장을 맡고 있는 문승 다성 회장은 기자와 만나 “협력사의 70% 이상 물량이 수출에 달렸는데 코로나19로 막혀 있다”며 “당장 4~5월에 쓸 자금이 급하고 부품업계는 고정비와 인건비 등 7조원 규모의 유동성 소요가 발생할 것”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나 업계의 유동성 위기에도 은행 대출 문턱은 여전히 높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신달석 자동차산업협동조합 이사장은 기자와 만나 “현재 정부의 대출 지원은 소상공인 위주이고, 중소·중견기업은 밀려 있다. 게다가 신용등급을 따지고 담보도 내놓으라고한다”며 “부품 협력업체는 이미 할 수 있는 담보를 다 내놓고 돈을 빌려 쓰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 담보를 요구하는 등 은행의 문턱이 높아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동차업계는 앞으로 7월까지 약 4개월간 수요절벽 및 공급망 차질이 발생하는 경우 총 28조1000억원(완성차업계 14조4000억원, 부품업계 13조7000억원)의 유동성 소요가 발생될 것으로 추산했다. 이에 P-CBO(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 등 대부분의 유동성 공급 지원책은 일정 신용등급(BB) 이상의 기업에만 해당돼 신용등급 완화(BB→B 이상), 금융기관 창구 담당자에 대한 면책 적용 등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자동차업계는 내수 진작을 위한 추가적인 정책 마련도 요구했다. 예병태 쌍용차 사장은 “정부의 개소세 인하에 더해 취득세 감면 정책도 추가로 시행하자”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쌍용차가 판매하고 있는 렉스턴스포츠는 픽업트럭으로 화물차로 분류되는데 현행 개소세는 승용차에만 적용되고 상용차는 대상에서 제외해 다른 완성차업체에 비해 누리는 효과가 덜한 것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개소세 감면 등의 영향으로 내수만 2.1% 소폭 늘며 완성차업체의 판매에 숨통이 틔였다.

성 장관은 “과거 와이어링 하니스(자동차용 배선 뭉치) 수급 차질 사례에서 보듯 한두 개 부품기업에서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자동차 생산 전반이 타격을 받게 된다”며 “정부는 그동안 발표한 대책을 자동차 부품기업들이 최대한 활용해 위기를 버텨낼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반면 익명을 요구한 부품업계 관계자는 “일부 부품업체는 4대 보험 납부가 어려울 정도로 유동성 위기인데 장관이 자동차와 부품업계의 애로사항을 청취하긴했지만, 산업부만의 역할로는 한계가 있다”며 “관계부처와 함께 자동차 산업을 지원하는 종합 대책을 마련해야한다”고 말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일단 이번 간담회는 업계의 의견을 청취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로 아직 지원책은 결정된 것은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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